요한1서 4장: 17-18
17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1 John 4: 17-18
17 In this way, love is made complete among us so that we will have confidence on the day of judgment, because in this world we are like him.
18 There is no fear in love. But perfect love drives out fear, because fear has to do with punishment. The one who fears is not made perfect in love.
-------------------------------------------------------
요한1서 4장/ 1 John 4: 17-18
17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17 In this way, love is made complete among us so that we will have confidence on the day of judgment, because in this world we are like him.
‘이로써’는 16절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입니다.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사랑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과,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 둘다를 의미합니다.
‘담대함’의 헬라어 [파르레시안]은 2:5에서 온전히 성취된 사랑과 연결되어 ‘순종’으로 묘사되며, 담대함이 믿음과 함께 나타납니다 (요3:18, 5:24). 사랑은 믿음을 통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그리스도인 상호간에 지속적인 내주를 이루고, 그 내주로 인해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믿음과 사랑 그리고 순종의 생활은 그리스도인들이 마지막 날에 담대함을 가질수 있는 근거를 이룹니다.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이는 문자적으로, ‘왜냐하면, 그가 어떠하신 것 처럼, 우리도 세상에서 그렇게 되기 때문입니다’ 라는 의미입니다.
‘주의 어떠하심’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1) 예수님의 영원한 순수성, 사랑, 의로우심, 그리고 하나님과의 완전한 교제를 의미합니다.
(2) 그리스도께서는 성육신하셔서 이 땅에 오셔서, 수많은 유혹과 고통속에서도,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과 사랑안에서,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며 교제를 나누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도 그렇게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과 사랑 안에서,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며 교제를 나눌 것입니다.
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18 There is no fear in love. But perfect love drives out fear, because fear has to do with punishment. The one who fears is not made perfect in love.
‘두려움’의 헬라어 [포보스]는 신약성경에서,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을 의미합니다 (행 9:31, 롬 3:18, 고후 5:11, 7:1, 엡 5:21). 그러나 본절의 [포보스]는 앞절의 담대함의 반대 개념으로, 노예가 갖는 두려움을 가리킵니다 (요 19:38, 10:19, 롬 8:15). 이런 [포보스]는 사랑과 공존할 수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며 그 사랑을 소유하고 있다면, 그리스도의 마지막 날에 하나님 앞에서 전혀 두려움 없이 담대해질 수 있습니다. 비록 죄는 두려움을 유발시킬지라도,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며 사랑을 소유한 자들에게 사랑은 담대함을 갖도록 합니다.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본문은 사랑과 두려움이 공존 할수없는 이유를 나타냅니다. ‘형벌’은 마지막날과 연결하여 하나님의 정죄를 의미한다는 해석과,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를 방해하는 고통을 가리킨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이 두가지 해석이 나름 타당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소유하고 그 사랑안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과 지속적인 상호 내주와 사랑의 관계가 유지 됩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날에 죄로 인한 종죄함에서 오는 두려움을 갖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랑 안에서 담대함을 갖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이 지닌 사랑은, 사랑과 공존할 수 없는 두려움을 쫓아내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개역 성경에는 반의 접속사인, [데: 그러나]가 생략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인 상호간의 내주로 인한 사랑은 이미 하나님의 자녀 안에서 온전히 이루어 졌습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사랑 그리고 순종의 삶을 살아가는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만약 누구든지 담대함 없이 두려움에 사로잡힌다면, 그안에 하나님의 사랑을 소유하지 못한 것이므로 그 사랑의 실체는 온전히 성취되지 않은 것입니다.
'신약 > 요한1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요한1서 4장: 14-16 (0) | 2026.09.09 |
|---|---|
| 요한1서 4장: 11-13 (0) | 2026.09.08 |
| 요한1서 4장: 9-10 (0) | 2026.09.07 |
| 요한1서 4장: 7-8 (0) | 2026.09.05 |
| 요한1서 4장: 4-6 (0) | 2026.09.0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