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1서 3장:16-20
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17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19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니
20 이는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이라
1 John 3:16-20
16 This is how we know what love is: Jesus Christ laid down his life for us. And we ought to lay down our lives for our brothers.
17 If anyone has material possessions and sees his brother in need but has no pity on him, how can the love of God be in him?
18 Dear children, let us not love with words or tongue but with actions and in truth.
19 This then is how we know that we belong to the truth, and how we set our hearts at rest in his presence
20 whenever our hearts condemn us. For God is greater than our hearts, and he knows ever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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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1서 3장/1 John 3:16-20
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16 This is how we know what love is: Jesus Christ laid down his life for us. And we ought to lay down our lives for our brothers.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알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그노카멘]은 완료형입니다. 이 단어는 이 서신의 다른 곳에서는 거의 현재형으로 사용되었으나, 본문에서 완료형을 사용한 이유는, 우리가 알게 된 것이 특별한 역사적 사건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15절에서 미워하는 자의 표본으로 가인을 내세웠으나, 본절에서 사랑하는 자의 표본으로 그리스도를 언급하여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줍니다.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요한은 자기 희생적 사랑의 본보기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제시하고, 하나님과 그리스도에게 속한 우리도 그리스도께서 하신일을 본받아 자기 희생적 사랑을 행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강조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이 가장 큰 사랑이라고 말씀하신 것과 상통하는 것입니다(요 15:12-13).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행해야할 사랑은 자기 부정에서 출발합니다.
17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17 If anyone has material possessions and sees his brother in need but has no pity on him, how can the love of God be in him?
‘재물’의 헬라어 [비온]은 단순한 재물이 아니라 ‘삶의 수단으로서의 재물’을 의미합니다 (막 12:44). 동시에 ‘보고도’에 해당하는 헬라어 [데로레]는 그냥 한번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지켜보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요한은 구체적인 사랑의 예로서, 최소한의 생활조차 어려운 사람의 생활을 도와주도록 권합니다. 생활이 어려운 형제의 궁핍함을 오래 지켜보면서도 그의 궁핍함을 도와주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고 말할 수 없다고 강조합니다.
본절의 ‘하나님의 사랑’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심처럼 사랑하는 사랑을 의미합니다.
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18 Dear children, let us not love with words or tongue but with actions and in truth.
‘말과 혀’는 실천이 없는 사랑을 의미합니다. ‘행함과 진실함’은 실천하는 사랑을 표현합니다. ‘행함’은 사랑의 역동적 측면이고, ‘진실함’은 사랑의 질적인 측면입니다. 요한는 본절에서 사랑의 실천을 선언(약 2:15-17)했습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요한이 언급했던, ‘하나님에게서 난자 마다 의와 사랑이 있어야 함’에 대해 요약입니다.
19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니
19 This then is how we know that we belong to the truth, and how we set our hearts at rest in his presence
‘이로써’는 10-18절 까지의 내용을 가리킵니다.
‘굳세게 하리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페이소멘]은 여러 해석이 있으나, 가장 합당한 것은. ‘안심시키다’라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고, ‘우리 마음의 두려움과 염려’라는 목적어가 생략되어 있습니다. 본절에서 요한은 그리스도인들이 사랑의 실천을 통해서 진리에 속했음을 알수 있다고 주장하고, 이를 20절과 연결합니다. 사랑의 실천을 할 때, 주 앞에서 두려움이 없이 담대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20 이는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이라
20 whenever our hearts condemn us. For God is greater than our hearts, and he knows everything.
본절에는 헬라어 [호티: 왜냐하면]이 두번 사용됩니다. 이에 대해서 여러 해석이 있으나 가장 타당한 것은 이렇습니다. 첫번째 [호티]는 [호]와 [티]르 분리시켜 관계 대명사 중성 명사로 보고, [에안: …이면]과 합쳐서 ‘...할 때마다’라는 의미 봅니다. 두번째 [호티]는 종속절을 이끄는 접속사로서 ‘왜냐하면’ 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그러면, 21절의 내용과 대립되는 구문으로 보이며 자연스런 해석이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이라’
본문은 두 가지 견해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에 대한 묘사라는 견해: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을 보시면 책망할 것이 너무 많으니, 우리 자신도 조심해야 된다는 의미입니다.
(2)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에 대한 묘사라는 견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아시므로, 우리 자신이 우리 마음을 책망할 때 오히려 위로를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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