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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야고보서

야고보서 3장: 7-10

by 갈렙과 함께 2026. 6. 3.

야고보서 3장: 7-10

7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은 다 사람이 길들일 수 있고 길들여 왔거니와

8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9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10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James 3: 7-10

7 All kinds of animals, birds, reptiles and creatures of the sea are being tamed and have been tamed by man,

8 but no man can tame the tongue. It is a restless evil, full of deadly poison.

9 With the tongue we praise our Lord and Father, and with it we curse men, who have been made in God's likeness.

10 Out of the same mouth come praise and cursing. My brothers, this should not 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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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3장/ James 3: 7-10

7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은 다 사람이 길들일 수 있고 길들여 왔거니와

7 All kinds of animals, birds, reptiles and creatures of the sea are being tamed and have been tamed by man,

 

‘길들일 수 있고’의 헬라어 [다마제타이]는 현재 시제이고, ‘길들여 왔거니와’의 [데다마스타이]는 완료시제입니다. 야고보는 현재시제와 완료시제를 중복해 사용하여, 인간이 여러 세대에 걸쳐서 짐승과 새, 벌레와 해산물 등의 동물을, 지배하고 정복한 연속적인 상황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연을 다스리고 정복할 권한을 주셨습니다. 인간은 동물을 다스려 길들였고, 동물들은 인간에게 지배되고 복종했습니다(창 1:28, 시 8:6-8).

‘짐승 [데리온]은 길들지 않은 동물들, 즉 야생동물에만 사용된 단어입니다. 야생 동물이 길들여지는 것은 사 11: 6-9처럼 메시야 시대의 상징으로 사용됩니다.

 

8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8 but no man can tame the tongue. It is a restless evil, full of deadly poison.

 

인간은 모든 짐승들을 다스리고 길들였으나, 자신의 지체인 작은 혀를 스스로 제어할 수 없었습니다. 야고보는 앞절에서 인간이 다스린 동물과 본절의 다스릴 수 없는 혀를 대조하여 혀의 악함과 파괴력을 강조합니다. 인간 자신의 능력으로 혀를 제어하지 못하지만,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혀는 성령에 의해서 지배되고, 하나님의 도우심과 긍휼히 여기심으로 인해 은혜 가운데 저어할 수 있습니다.

 

 야고보는 제어되지 않는 혀의 두 가지 속성을 제시합니다.

‘쉬지 아니하는 악’ : 쉬지 아니하는’의 헬라어 [아카타스타톤]은, 1:8에서는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정함이 없는’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악은 불안정함과 한 마음을 품지 않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런 악은 복종될 수 없는 흉악한 짐승과 같아서 제어 될수 없음을 암시합니다.

‘죽이는 독’: ‘죽이는’을 의미하는 헬라어 [다나테포루]는 [다나토스: ‘죽음’]과 [페로: ‘가져오다’]의 합성어로 ‘죽음을 가져오는’이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죽이는 독이 가득하다’라는 구약의 교훈을 반영하고있습니다 (시 140:3, 잠 10:8, 11:9). 독사에게 물리면 즉시 온 몸에 독이 퍼지고 마침내 죽음을 초래하듯이 혀를 잘못 사용하면, 이웃을 파괴하고 범죄케 하여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9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9 With the tongue we praise our Lord and Father, and with it we curse men, who have been made in God's likeness.

 

야고보는 혀를 통해 ‘찬송’과 ‘저주’를 하는, 혀의 양면성을 보여 줍니다.

‘주 아버지’라고 해석된 헬라어 [톤 퀴리온 카이 파테라]는 ‘주와 아버지’가 아니라 ‘주 이신 아버지’라는 의미로 ‘주’와 ‘아버지’ 모두가 하나님께 적용됩니다. ‘주 아버지’는 하나님을 경배하는 고백으로, 혀의 가장 고귀한 기능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임을 나타냅니다.

 

‘저주’는 구약성경에 자주 나타나는 주제입니다 (창 9:25, 49:7, 잠 11:26, 24:24, 26:2). 이런 저주는 고대 세계에서 큰 힘을 가진 걸로 나타났습니다. 상대방이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지고 영원한 심판을 받기를 기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약에 비교하면, 신약에서는 저자들이 저주하는 것을 금했습니다(롬 12:14).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저주를 금하고, 오히려 저주하는 자들을 축복하라고 하셨습니다 (눅 6:28).

 

‘형상’ [호모이오신]은 [호모이오오: 닮게 만들다]에서 나온 단어로 ‘하나님의 외관대로 지으심을 받은 것’을 의미합니다. 

‘지음 받은’을 의미하는 [게고노타스]는 완료시제입니다. [호모이오신]과 [게고노차스]는 인간이 범죄로 타락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자신의 거룩함을 보여주는 흔적을 여전히 가지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그러므로 야고보는 사람이 입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또 사람을 저주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높이거나, 하나님을 저주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강조하며 그 불합리성을 지적합니다. 그 이유는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입니다.

 

10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10 Out of the same mouth come praise and cursing. My brothers, this should not be.

 

야고보는 한 입에서 찬양과 저주가 나오는 이중성을 경고합니다. 

‘마땅치 아니하니라’의 헬라어 [우 크레]는 선악간의 차이를 분별하는 기준이 아니라 이중적인 면, 찬송과 저주의 공존으로 생겨나는 불안정함을 나타냅니다. 이처럼 입에서 나오는 말의 이중성으로 인해서 생기는 모든 양태는 죄악이고 사람들이 가장 범하기 쉬운 범죄입니다. 이런 말의 폐해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엄중하게 경고하셨습니다 (마 15:11.18,19).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지배와 인도하심을 따라서 우리의 입을 일관성 있게 하나님만을 찬양하고, 사람에게 사랑과 친절을 베푸는 일에 효과적으로 사용해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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