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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빌립보서

빌립보서 4장/ Philippians 4: 10-15

by 갈렙과 함께 2025. 10. 13.

빌립보서 4장: 10-15

10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14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

15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Philippians 4: 10-15

10 I rejoice greatly in the Lord that at last you have renewed your concern for me. Indeed, you have been concerned, but you had no opportunity to show it.

11 I am not saying this because I am in need, for I have learned to be content whatever the circumstances.

12 I know what it is to be in need, and I know what it is to have plenty. I have learned the secret of being content in any and every situation, whether well fed or hungry, whether living in plenty or in want.

13 I can do everything through him who gives me strength.

14 Yet it was good of you to share in my troubles.

15 Moreover, as you Philippians know, in the early days of your acquaintance with the gospel, when I set out from Macedonia, not one church shared with me in the matter of giving and receiving, except you on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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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4장/ Philippians 4: 10-15

10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10 I rejoice greatly in the Lord that at last you have renewed your concern for me. Indeed, you have been concerned, but you had no opportunity to show it.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에서 ‘이제’의 헬라어는 [에데포테]로 ‘마침내’라는 의미입니다. 이는 얼마동안 단절되었던 교제가 다시 연결된 것을 말합니다. ‘다시 싹이 남이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네달레테]는 ‘다시 꽃이 피는 것을 비유할 때 사용하는 단어로 여기서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1)너희가 나의 관심에 신경을 쓸수 있을 정도로 번창하였다. (2) 너희가 나에 대해서 다시 새롭게 관심이 생겨났다. 이 두가지는 상호 보완적입니다. 빌립보 교인들이 항상 바울을 돕고자 하는 사려 깊은 마음과 계획을 가졌으나 적절한 기회와 여건이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여건이 마련되었으니 바울을 돕고자하는 그들의 의지를 실현합니다.

 

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1 I am not saying this because I am in need, for I have learned to be content whatever the circumstances.

 

바울은 자신이 곤경 가운데 있으나, 이 어려움에서 벗어나는 것이 자신의 주된 관심은 아니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어떠한 형편에든지’의 헬라어 [엔 호이스 에이미]는 문자적으로 ‘어떤 환경에서도 나는 존재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곤경에 처한 궁핍한 생활을 숙명적으로 받아들이거나 체념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외적 형편에 상관치 않고, 근심과 걱정에서 초연한 상태를 말합니다. 그리스도로 인해 은혜와 평강을 덧입고 있었기에 바울은 외적 여건에 초연하며 자족할 수 있었습니다.

 

‘자족’으로 번역된 헬라어 [아우타르케스]는, 신약에서 본절에만 사용된 단어로 스토아 철학자들이 즐겨사용하던 윤리적인 용어였습니다. 당시 스토아 철학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변경시킬수 없는 불가항력적 형편을 신의 뜻으로 받아 들였습니다. 초조해 하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숙명적으로 여기고 그 가운데서 만족하는 것을 추구했습니다.

물론 바울의 자족 생활은 스토아 철학과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바울이 자족할 수 있는 비결은 예수 그리스도 였습니다..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2 I know what it is to be in need, and I know what it is to have plenty. I have learned the secret of being content in any and every situation, whether well fed or hungry, whether living in plenty or in want.

 

‘모든 일’은 특수한 상황과 평상적의 모든 상황을 말합니다. 이 모든 상황에서 살아 계셔서 역사하시는 그리스도의 능력에 의지했기 때문에, 바울은 복음 사역에 전력을 다할수 있었습니다.

‘비결을 배웠노라’로 번역된 헬라어 [메뮈에마이]는 ‘비밀을 전수받다’라는 의미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자족할 줄 알게 된것은, 하나님께 그 비밀을 배웠다고 말합니다.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13 I can do everything through him who gives me strength.

 

‘내게 능력 주시는 자’는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딤전 1:12) 이십니다. 바울은 자신이 어떤 환경 속에서도 승리할 수있는 능력이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능력을 주셨다고 말합니다. 바울 처럼,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와의 생명적 관계 안에서 모든 형편에 자족하고  이길 힘을 가지게 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비밀이고 참된 능력의 원천입니다.

 

14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

14 Yet it was good of you to share in my troubles.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의 선물에 감사하고, 그 선물을 보내는 빌립보 성도들의 고귀한 정신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15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15 Moreover, as you Philippians know, in the early days of your acquaintance with the gospel, when I set out from Macedonia, not one church shared with me in the matter of giving and receiving, except you only;

 

‘복음의 시초’는 본 서신을 기록할 때부터 약 10년전 (행 16장),  빌립보에서 복음 사역을 마친다음마게도냐를 떠났던 때 를 말합니다. (살후 2:13)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는 바울의 복음 사역을 도운 교회가 없었다는 말이 아닙니다.바울이 마게도냐를 떠나 아가야로 갈 때, 빌립보교회 만 그에게 물질적 도움을 주었다는 의미입니다.

 

‘주고 받는’이라는 말은 헬라어 [로곤 도세오스 카이 렘프세오스] 인데 부기의 대차대조표를 의미합니다. 즉 ‘거래 계좌’ 를 의미하고, 그 비용은 교회가 복음 사역자들의 선교 비용을 충당하는 것이 마땅한 임을 나타냅니다. (고전 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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