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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베드로후서

베드로후서 1장: 8-11

by 갈렙과 함께 2026. 7. 24.

베드로후서 1장: 8-11

8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9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

10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11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2 Peter 1: 8-11

8 For if you possess these qualities in increasing measure, they will keep you from being ineffective and unproductive in your knowledge of our Lord Jesus Christ.

9 But if anyone does not have them, he is nearsighted and blind, and has forgotten that he has been cleansed from his past sins.

10 Therefore, my brothers, be all the more eager to make your calling and election sure. For if you do these things, you will never fall,

11 and you will receive a rich welcome into the eternal kingdom of our Lord and Savior Jesus Chr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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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후서 1장/ 2 Peter 1: 8-11

8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8 For if you possess these qualities in increasing measure, they will keep you from being ineffective and unproductive in your knowledge of our Lord Jesus Christ.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은 앞서 언급한 덕목들(5-7절: 믿음, 덕, 지식, 절제, 인내, 경건, 형제 우애, 사랑)의 근원입니다.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아는 지식을 통해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신의 성품에 참여하도록 하셨습니다 (3절)

‘알기에’ 라고 번역된 [에피그노신]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그리스도인의 전체 삶에 기본이 되는 구원얻는 지식입니다.

 

‘게으르지 않고 열매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게으르지’ [아르구스]와 ‘열매없는 자’[아카르푸스]는 본서에서 거의 동의어로 사용됩니다. 이 두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대부분, 그리스도인의 신앙에서 윤리적 노력과 관계되어 사용되었습니다. 

‘게으름’은 ‘행함이 없는 믿음’ (약 2:20)을, ‘열매없음’은 윤리적 특성이 드러나지 않는 삶을 나타냅니다 (마 3:8, 막 4:20, 갈 5:22, 골 1:10, 약 3:18).

 

9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

9 But if anyone does not have them, he is nearsighted and blind, and has forgotten that he has been cleansed from his past sins.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5-7절에 언급한 덕목을 갖추지 못한 자들에 대한 묘사입니다.

‘소경’의 헬라어 [튀플로스]는 신약성경에서 진리 보기를 거절하거나 보지 못하는 자들을 은유적으로 표현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마 15:14, 23:16, 눅 6:39, 요 9:40, 41, 롬 2:19).

‘멀리보지 못하고’의 헬라어 [뮈오파존]은 ‘근시’라는 의미로 본절에서는 [튀플로스]와 결합하여 장님보다 훨씬 더 심각한 상태를 묘사합니다.

5-7절의 덕목을 갖추지 못한 자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진실의 빛을 잃어버려서 영적 안목이 어두워진 자들입니다 (계 3:17). 이들은 바로 앞에 놓여 있는 인간적인 탐욕에 눈이 어두워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합니다. 

 

‘그의 옛 죄를 깨끗하게 하심을 잊었느니라’

본절은 관거에 그리스도인들이 받았던 침례에 대한 언급입니다.

‘옛’에 해당하는 헬라어 [팔라이]가 사용되었습니다. 베드로는 본절에서 과거에 행한 침례를 염두에 두고 죄가 청산된 것을 잊어버리고 과거로 되돌아가려는 자들을 전제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깨끗하게 하심’의 헬라어 [투 카다리스무]도 정결케 하는 침례를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행 22:16, 고전 6:11).  침례는 죄 용서받고, 이제 까지의 죄된 생활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을 침례 자체에만 국한시킨 나머지, 거룩한 삶을 계속 추구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은 옛 죄악의 상태로 되돌아갈 위험이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베드로는 죄악된 삶으로 되돌아가려는 경향을 경고합니다. 침례가 죄를 씻을 뿐 아니라 더 이상 죄에 머물지 않고 성결한 삶을 살게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킵니다.

 

10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10 Therefore, my brothers, be all the more eager to make your calling and election sure. For if you do these things, you will never fall,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5절을 반복한 것으로 부지런히 애쓰라는 권면입니다.

‘굳게 하라’의 헬라어 [베바이안…포이에이스다이]에서 [베바이안]은 의사를 확인할 때 사용하는 법률 용어로 무엇을 ‘확실히 한다’라는 의미입니다. [포이에이스다이]는 중간태로서, 수신자 스스로가 해야하는 일임을 나타냅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인의 구원이 하나님의 ‘부르심’(벧전 1:15) 과 ‘택하심’(벧전 1:2)에 관계되어 있음을 밝혔습니다. 그런데 본절에서 ‘부르심’을 먼저 언급한 것은 인간의 응답에 강조점을 두기 위함입니다.  즉, 복음에 합당한 윤리적인 삶을 살아야함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은혜 안에서 이루어지는 도덕적인 노력을 통해서 거룩한 삶을 영위해야 되며, 궁극적인 구원을 향해 나아가야 됩니다.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실족’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타이세테]는 원래 말이 ‘디딤돌에서 미끌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프타이세테]는 범죄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롬 11:11, 약 2:10). 그러나, 본절에서는 단순한 범죄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구원을 얻지 못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음 절에 영원한 나라를 향해 가는 여정에 대해 설명하기 때문입니다.

 

11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11 and you will receive a rich welcome into the eternal kingdom of our Lord and Savior Jesus Christ.

 

‘이같이 하면’은 힘써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거룩한 관대함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도록 넉넉히 충분히 하실 것입니다. 

앞절은 궁극적 구원을 얻는데 인간의 노력이 필요함을 역설했고, 본절에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라는 표현을 하여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눅 1:33, 계 11:15).

 

베드로가 이런 표현을 한 이유는 아마도 본 단락(3-11절)에서 언급한 기독론적 관심과 일치 시키기 위함일 것입니다. 이런 그리스도의 나라는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신 것으로 (눅 22:30), 하나님의 나라와 동일합니다 (마 13:41, 16:28). 미래에 주어질 새 하늘과 새 땅을 가리킵니다. 

‘우리주 곧 구주’의 헬라어 [투 퀴리우 헤몬 카이 소테로스]는  ‘우리 주이시며 구세주이신’이라는 의미로 기독론적 칭호입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구세주 되시며, 온 우주의 주 (主), 주인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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