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3장: 8-11
8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9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10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11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
1 Peter 3: 8-11
8 Finally, all of you, live in harmony with one another; be sympathetic, love as brothers, be compassionate and humble.
9 Do not repay evil with evil or insult with insult, but with blessing, because to this you were called so that you may inherit a blessing.
10 For, 'Whoever would love life and see good days must keep his tongue from evil and his lips from deceitful speech.
11 He must turn from evil and do good; he must seek peace and pursue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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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 3장/1 Peter 3: 8-11
8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8 Finally, all of you, live in harmony with one another; be sympathetic, love as brothers, be compassionate and humble.
2:18-3:7의 명령들을 마무리하면서, 5개의 형용사를 사용하며 완곡하게 권면합니다.
이 형용사들은 모두 분사적인 용법으로, 신자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특성과 신자의 상호 관계에 대해 언급했음을 나타냅니다.
‘마음을 같이하여’ [호모프로네스]: [호모스:같은]와 [프렌:마음]의 합성어입니다. ‘한가지 일에 뜻을 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동일한 의견을 가지라는 의미가 아니라 각자가 서로에 대한 동일한 관심을 가지며 영적인 끈으로 연합되어야 함을 나타냅니다 (행 4: 32).
‘동정하며’ [쉼파데이스]: [쉰: 함께]와 [파스코: 고통을 받다]의 합성어입니다. ‘[쉼파데이스]의 직접적 의미는 ‘동정심을 갖다’ 이고, 다른 사람의 감정에 참여하여 고난 받는 사람을 적극적으로 동정하는 것을 나타냅니다 (히 10:34).
‘형제를 사랑하며’ [필라델포이]: [필로스: 사랑]와 [아델포스: 형제]의 합성어 입니다. 이는 단순한 형제애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에 결속시키는 형제애로서 그리스도인이 행해야 할 윤리적 덕목입니다 (롬 12:10, 살전 4:9, 10, 히13:1, 벧후 1:7).
‘불쌍히 여기며’ [유스플랑크노이]: [유: 좋은]와 [스플랑크논: 마음]의 합성어입니다. [유스플랑크노이]는 히포크라테스 당대에는 ‘내장이 강한’ 사람을 가리켰습니다. 그뒤에 변화되어 ‘용기 있는’, ‘인정이 많은’ 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신약성경에서는 인간의 가장 깊은 감정이나 동정심을 나타낼 때 사용되었습니다. (고후 7:15, 몬 1:7)
‘겸손하며’ [타페이노프로네스]: [타페이노스: 겸손한]와 [프렌: 마음, 생각]이 합성어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가지셨던 마음으로(잠 29:23, 빌 2:6-9), 낮아지는 마음을 나타냅니다.
9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9 Do not repay evil with evil or insult with insult, but with blessing, because to this you were called so that you may inherit a blessing.
그리스도인의 행동 원리는 자기를 사랑하는 자만 아니라, 자기를 해치고, 욕하는 자에게도 보복하지 않고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고 겸손하게 대하는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직접 말씀하셨던 교훈입니다 (눅 6:27-29, 23:34).
‘갚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포디돈테스]는 당연히 갚아야 하는 것으로, [아포디오미:지불하다]에서 유래한 단어입니다.
‘복을 빌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율로군테스]는 저주의 반대말로, ‘좋게 말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인들이 당연히 악이나 욕으로 갚아도 될 만한 상황 속에서라도, 저주나 앙갚음을 하지 말고 도리어 축복하고 중보기도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이는’ 에 해당하는 헬라어 [히나]는 ‘...을 위해서’ 라는 의미입니다. 이는 우리가 ‘우리가 복을 받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축복해야 한다’ 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본절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고 부르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사람을 축복해야 한다’ 라는 의미로 해석해야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복을 빌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10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10 For, 'Whoever would love life and see good days must keep his tongue from evil and his lips from deceitful speech.
시편 34:12-16을 인용한 것입니다. 시편에서는 ‘생명’과 ‘좋은 날’이 이 세상과 관련된 표현이었으나, 베드로는 본절에서 그 의미를 종말론적 차원까지 확대하고 있습니다.
‘생명’은 단순히 ‘이 세상의 삶’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소망인 영생을 지칭합니다. ‘생명을 사랑하고’는 7절의 ‘알아’와 연결되어 단순히 생명을 사랑하고 소망하는 것만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깨달아 그 목적에 맞게 소망하는 것까지가 그 의미입니다.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영생을 사랑하고 다가올 세계를 간절히 바라는 그리스도인들은 , 먼저 혀를 조심하여 악한 말을 하지 말아야 됩니다 (약 3:6).
‘거짓’의 헬라어 [돌론]은 다른 사람을 속이거나 해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이익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비방하고 헐뜯는 것을 삼가하고 화평을 이루어야 됩니다. 이런 화평은 세상에 목표를 두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을 목표로 삼을 때 이루어집니다.
11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
11 He must turn from evil and do good; he must seek peace and pursue it.
‘떠나’의 헬라어 [엑클리나토]는 문자적으로 ‘돌아서라’라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의지로 악에서 돌아서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 말과 행실이 일치하는 가운데, 선을 행해야 됩니다.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 는 시편 34편의 인용입니다. ‘화평을 구하는 것’은 서로를 세워주는 것입니다 (딤후 2:22). 현실적인 삶에 순응하여 따라가는 것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평화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 까지도 희생할 수 있는 삶입니다. 이런 ‘화평’은 상대가 불신자이든 (롬 12:18), 그리스도인이든 (고후 13;11, 살전 5:13),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실천해야 되는 매우 중요한 윤리적 덕목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를 열심으로 붙잡아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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