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3장: 5-7
5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6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순종한 것 같이 너희는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면 그의 딸이 된 것이니라
7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1 Peter 3: 5-7
5 For this is the way the holy women of the past who put their hope in God used to make themselves beautiful. They were submissive to their own husbands,
6 like Sarah, who obeyed Abraham and called him her master. You are her daughters if you do what is right and do not give way to fear
7 Husbands, in the same way be considerate as you live with your wives, and treat them with respect as the weaker partner and as heirs with you of the gracious gift of life, so that nothing will hinder your pray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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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 3장/1 Peter 3: 5-7
5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5 For this is the way the holy women of the past who put their hope in God used to make themselves beautiful. They were submissive to their own husbands,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소망을 둔 것처럼, 구약 시대의 ‘부녀들도’ 이미 하나님께 소망을 둔 자들로서 ‘거룩한 자들’ [하기아이] 이었습니다. 이 호칭은 선지자, 사도, 천사를 호칭할 때 사용된 것입니다. 하나님께 둔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되었습니다.
‘부녀들’ 헬라어 [귀나이케스]는 ‘사라’를 예로 들었으나, 복수로 표현했습니다. 이는 유대 전승에 나타난,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의 아내인. 사라, 리브가, 라헬과 레아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들은 그들의 뜻을 하나님께 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메시야를 갈망했던 그들은 내면의 아름다움을 단장했던 자들이었습니다 (히 11:13).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거룩한 부녀들’이 갖춘 내면의 아름다움을 ‘순종으로 소개합니다. ‘단장하다’의 헬라어 [에코스문]은 습관적인 행위를 나타내는 미완료 과거형으로 ‘단장하곤 했다’라는 의미입니다. 여인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은 내적인 단장이며 썩어 없어질 것이 아니고 하나님 앞에서 새게 되는 장식입니다.
6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순종한 것 같이 너희는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면 그의 딸이 된 것이니라
6 like Sarah, who obeyed Abraham and called him her master. You are her daughters if you do what is right and do not give way to fear
사라는 아브라함을 ‘주’라 부름으로 순종했습니다(창 18:12). 자기 남편을 주라고 칭했던 것은 당시의 풍습이었으나, 베드로는 ‘주’라는 호칭이 아브라함에 대한 사라의 순종의 표시라고 강조합니다. 이는 신자들이 그리스도를 주라 창하고 복종하는 것과 동일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딸’에 해당하는 헬라어 [테크나]는 문자적으로는’자녀’를 의미합니다. 이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모든 믿는 자의 믿음의 아버지인 것처럼 (롬 4:11, 갈 3:7), 아브라함 에게 순종한 아내 사라 역시 모든 믿는 자의 어머니가 되며 (갈 4:22-31), 아브라함과 사라는 모든 믿는 자의 부모가 됩니다. 이사야 51:2 에는 아브라함과 사라를 동일하게 유다의 부모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약에서도 동일하게 그들을 부모로 간주할 수 있습니다.
‘너희는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면’
이는 조건적 분사로서가 아니라, 현재 분사로 부정과거로 연결시켜 이미 ‘사라의 딸이 되었으므로 선을 행하고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라는 해석이 적합합니다 (Lenski).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함으로’는 잠 3:25’의 인용입니다. 이 말은 너희가 딸이 되었으므로 이교도 남편들이 선을 행하는 것을 방해하고 난폭하게 취급하는 것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런 두려운 상황 속에서도 침착하고 용기를 가지라는 권면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딸이 되었으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지켜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7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7 Husbands, in the same way be considerate as you live with your wives, and treat them with respect as the weaker partner and as heirs with you of the gracious gift of life, so that nothing will hinder your prayers.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 처럼 남편들도 아내에게 해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는 1절과 동일한 분사형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결혼의 관계를 세상의 제도적인 것으로만 보지 말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로 인식해야 함을 시사합니다. 그러므로 남편된 자들이 마땅히 아내에게 결혼 생활 속에서 감당해야할 의무는 연약한 아내를 보살펴 주는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부부 관계에서는 마땅한 ‘지식’이 있어야 됩니다. 이 ‘지식’ [그노신]은 하나님께서 의도하고 계신, 결혼 관계에 대한 인식으로, 결혼 생활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바로 분별하는 통찰력을 의미합니다.
‘동거하다’의 헤라어 [쉬노이쿤테스]는 [쉬노이케오: 함께 살다]에서 나온 말입니다. 이는 특히 성교와 관련된 말이지만, 본문에서는 단순히 남편이 아내와 갖는 성적인 관계 만이 아니라 여자의 육체적인 연약함을 돌보는 전체적인 관계를 나타냅니다.
‘’그를 … 귀히 여기라’ 베드로는 두 가지 이유를 들어 남편이 아내를 귀하게 대할 것을 권면합니다.
(1) 더 연약한 그릇이요: 이는 지적이나, 도덕적인 연약성이 아니라 육체적인 연약성을 가리킵니다.
(2)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은 자: 영적인 면에서 남편과 동등하게 영생의 은총을 공유한 자이며, 그것을 상속받을 동들한 동반자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남편과 아내가 꾸미는 가정은 교회의 축소판입니다. 가정 안에서 남편과 아내가 협력하며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기도하면, 두 세사람과 함께 계신 주님께서 응답하실 것입니다 (마 18:20, 고전 7:5). 그러나 서로의 관심과 사랑을 필요로 하는 기도 생활에서 (4:7-11, 마 5:23-24, 6:12-14, 18:15-20, 막 11:25) 남편이 아내를 악하게 대하거나, 서로가 불화하는 경우는 기도의 효력이 발생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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