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약/로마서

로마서 15장: 25-27

by 갈렙과 함께 2025. 1. 11.

로마서 15장: 25-27

25 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26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연보하였음이라

27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영적인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적인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Romans 15: 25-27

25 Now, however, I am on my way to Jerusalem in the service of the saints there.

26 For Macedonia and Achaia were pleased to make a contribution for the poor among the saints in Jerusalem.

27 They were pleased to do it, and indeed they owe it to them. For if the Gentiles have shared in the Jews' spiritual blessings, they owe it to the Jews to share with them their material blessings.

 

----------------------------------------

로마서 15장: 25-27

25 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25 Now, however, I am on my way to Jerusalem in the service of the saints there.

 

그러나 서바나 선교 계획의 중간 경유지로서 로마에 가지만, 도중에 예루살렘을 거쳐서 가야 됨을 언급합니다. 바울이 소망하던 로마교회의 방문을 다시 뒤로 미루고 예루살렘을 방문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는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 성도들과 기타 이방교회의 성도들과의 화합과 일치가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 이외의 모든 교회는 대부분 이방인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유대 기독교인들과 이방인 기독교 개종자 사이에는 다소 충돌과 갈등이 있었습니다. 유대 기독교 신자들이 이방인 개종자들에게 배타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었고 구약의 규례를 따르도록 강요하는 무리들도 있었습니다 (행 15:1, 5). 이런 사정이라서 바울은 이방인 성도들의 사랑의 행위를 통해서 예루살렘과 이방교회간의 관계를 극복시키고자 했습니다. 예루살렘의 가난한 교인을 돌보고 어려운 예루살렘 교회를 돕고자, 바나바와 함께 수리아 안디옥의 성도들의 헌금을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해주었습니다 (행 11:30, 12:25). 예루살렘교회를 돕는 이런 구제 행동을 ‘성도를 섬기는 일’이라고 표현합니다 (고후 8. 9장).

 

이 일들을 통해 사역자 바울이 일을 진행하는 우선 순위를 배울수 있습니다. 바울은 사모했던 로마 교회의 교인을 만나는 개인적인 기쁨보다는 어려운 성도를 돕는 일을 우선적으로 행하여 그들이 다른 성도들과 서로 사랑으로 연합해서 그리스도와 한 몸임을 알도록 하는데  먼저 힘을 쓰고 있습니다.

 

26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연보하였음이라

26 For Macedonia and Achaia were pleased to make a contribution for the poor among the saints in Jerusalem.

 

 고린도, 갈라디아, 마게도냐 등 많은 이방인 성도들이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헌금한 것을 바울이 전달합니다. (고전 16:1-3, 고후 8, 9장). 여기서 마게도니아와 아가야만 언급한 것은 바울이 이 서신을 기록할때 아가야에 있었고 최근에 마게도냐를 지나왔기 때문입니다. 

아가야 [아카이아] 는 고린도의 수도입니다. 그들은 어려운 예루살렘 교회를 돕고자 자원하는 마음으로 기쁘게 사랑의 선물을 바울을 통해서 예루살렘 교회에 보냈습니다. (고후 9:5-15)

 

 ‘얼마의 연보’’에 해당한 헬라어는 [코이노니안 티나]입니다. [코이노니아, koinonia]은 [교제, 친교, 공유, 기부, 교통]의 의미입니다. 이 문장을 직역하면, ‘얼마의 친교’를세웠다는 말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코이노니아] 을 일반적인 친교보다는 ‘헌금, 기부,연보’로 해석하는 것이 문맥에 어울립니다.

 

27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영적인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적인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27 They were pleased to do it, and indeed they owe it to them. For if the Gentiles have shared in the Jews' spiritual blessings, they owe it to the Jews to share with them their material blessings.

 

바울은 이 구제헌금의 성격을 ‘자원하는 심령과 의무’라는 관점으로 봅니다. ‘빚진 자’라고 번역된 헬라어 [오페일레타이]는 ‘오페일로 [빚지다]의 목적 소유격으로 ‘의무를 가진 자’라는 의미이나 여기서는 ‘손해를 준 사람에게 아직 보상하지 않은 사람’ 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바울은 이 용어를 1:14과 8:12에서도 사용했습니다. 자신을 가리켜 ‘모든 사람에게 복음의 빚진 자’ 라고 고백했습니다. 이런 고백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에 대해, 마치 채무자 같은 심정을 나타낸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복음의 빚진 자로서 사랑의 봉사와 복음 증거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바울의 이런 태도는, 이방인들도 유대인에게 가져야 할 태도입니다. 이방인들은 유대인에게 복음의 빚진 자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영적인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적인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는 이방인들이 유대인들에게 빚진 자라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을 합니다.

‘영적인’ 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뉴마티코이스]는 ‘영적인, 성령에 부합된’이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서는 ‘하나님의 구속적 은혜’ 을 말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이 유대로부터 이방세계로 전파된 사실을 가리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으로 나셨고 복음의 일차적 대상은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만약 예루살렘 교회가 그들의 영적 축복인 복음을 이방인에게 나누지 않았다면 이방인들의 아직 사단의 권세아래 죄악의 어둠 속에 머물렀을 것입니다. 

이제 이방인들은 예루살렘 유대 기독교 신자들로 시작된 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행 10장 )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방인들은 예루살렘 교회의 유대인 성도들에게 빚진 자들이 된 것입니다.  이 ‘빚’은 상업적인 빚의 의미가 아닙니다. 은혜를 크게 입은 자가 느끼는 부채감을 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루살렘 교회로 부터 ‘영적인 것’을 나눠 받았으니, 이제는 부유한 이방인들이 자신들이 가진 ‘육적인 것’으로 가난한 유대인 성도를 섬기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합니다. 그들도 가난한 유대인 성도에게 베풀어 줄수 있으니, 복음의 은혜를 갚는 것이고 좋은 일입니다.



'신약 > 로마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마서 15장: 28-29  (0) 2025.01.12
로마서 15장: 22-24  (0) 2025.01.10
로마서 15장: 19-21  (0) 2025.01.09
로마서 15장: 17-18  (0) 2025.01.08
로마서 15장: 16  (0) 2025.01.07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