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 후서 1장 : 6-9
6 너희로 환난을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7 환난을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자기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가운데에 나타나실 때에
8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9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2 Thessalonians 1: 6-9
6 God is just: He will pay back trouble to those who trouble you
7 and give relief to you who are troubled, and to us as well. This will happen when the Lord Jesus is revealed from heaven in blazing fire with his powerful angels.
8 He will punish those who do not know God and do not obey the gospel of our Lord Jesus.
9 They will be punished with everlasting destruction and shut out from the presence of the Lord and from the majesty of his 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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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 후서 1장 / 2 Thessalonians 1: 6-9
6 너희로 환난을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6 God is just: He will pay back trouble to those who trouble you
하나님의 공의의 속성을 보여주는 구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을 행하는 자들의 죄를 간과하지 않고 반드시 형벌하시고 선을 행하는 자들에게는 상을 주십니다. 이에 대해 레온 모리스(Leon Morris)는 ‘이 진리는 어떤 철학적 견해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하나님의 의로운 속성에 뿌리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갚으시고’의 헬라어 [안타포두나이]는 ‘합당한 것을 돌려준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전 3:9에서는 ‘보답할까’로 번역되어 좋은 의미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롬 11;35). 본문처럼 부정적 의미로도 사용되었습니다 (롬 12:19).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보응 원칙은 오직 하나님의 권한에 속한 것입니다 (히 10:30). 반드시 그들의 행한 악을 따라 갚으십니다 (롬 1:27). 핍팍받는 성도들은 핍박하는 자들에 대해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여야 한다. (살전 5:15). 그 뿐 아니라 더 적극적인 태도로 그들을 위해서 복을 빌어야 됩니다. (벧전 3:9).
7 환난을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자기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가운데에 나타나실 때에
7 and give relief to you who are troubled, and to us as well. This will happen when the Lord Jesus is revealed from heaven in blazing fire with his powerful angels.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극심한 환난과 핍박을 받은 것 처럼 바울과 동역자들도 그들과 함께 고난과 핍박을 당하고 있음을 상기시킵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과 일체감을 드러내며 그들이 환난이나 안식에 동참할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안식’의 헬라어 [아네신] 은 ‘팽팽하게 당긴 활의 줄을 원래의 상태로 느슨하게 한다’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서는 ‘역경에서 해방되다, 수고를 그치고 쉬다’하는 휴식의 개념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지금 바울은 그들이 믿음 때문에 무고하게 고난을 당하고 있지만 그 고난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라 결국 참된 안식과 평안을 얻게 되는 과정이라고 위로하고 있습니다.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는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장엄하게 묘사한 것입니다. ‘저의 능력의 천사들’은 그리스도의 권세 아래 있는 존재들로서 그분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보내진 존재들입니다 (마 13:49). 예수 그리스도 께서도 그 날에 (10절)천사들과 함께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마 16:27).
‘ 하늘로부터 불꽃 가운데에 나타나실 때에’ 여기서 ‘때’는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될 때, 즉 대심판의 날을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영광과 위엄 가운데 재림하실 때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될 것입니다.
‘하늘’의 헬라어 [우라노]는 ‘공중 (air :행11:6), 하늘 (sky, 계 6:14)’ 이나, 여기서는 ‘하나님의 영원한 거처’ (heaven, 마 5:16, 계 3:12)로서 ‘하나님의 보좌’ (마 23:22)의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리스도는 그곳에서 이 땅으로 오셨고 (요 3:13), 다시 그곳으로 승천하셨습니다 (벧전 3:22), 다시 재립하실 때에 천사들을 대동하고 그곳에서 내려오실 것입니다 (마 24:30). 이는 심판의 확실성을 나타냅니다.
‘나타나실’의 헬라어 [아포칼립세이]는 일반적으로 ‘계시, 폭로, 드러냄’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스도 께서 오실 때는 비밀에 싸였던 자신을 완전히 드러내실뿐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을 숨김없이 밝혀 드러내신다는 의미입니다. ‘불 꽃 가운데 나타나신다’는 것은 그의 주권과 영광과 위엄을 나타냅니다 (출 3:2 사 66:15, 계 1:13-15).
8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8 He will punish those who do not know God and do not obey the gospel of our Lord Jesus.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은 이방인 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시려는 은혜와 지식을 거절하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은 구원의 종말적 계시를 거부하는 자들은 결국 심판을 받는다는 사실을 기록하여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바울은 강조합니다.
‘형벌을 내리시리니’는 히브리적인 표현법입니다. 구약성경에서 형벌은 여호와 하나님 만 집행할 수 있는 그 분의 전유물입니다 (신 32:35). 그런데 그 형벌의 집행권이 예수그리스도께 있다는 것은 그 분이 하나님과 일체 이심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9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9 They will be punished with everlasting destruction and shut out from the presence of the Lord and from the majesty of his power
‘이런 자들은’의 헬라어 [호이티네스]는 질적인 면을 나타내는 관계대명사로 ‘이와 같은 종류의 사람들’이라는 의미입니다. 앞절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하지 않는 자들’을 말하고 이런 종류의 사람들은 형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말합니다.
‘주의 얼굴’은 ‘주의 임재’ 혹은 ‘예수 그리스도 그 자체’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주의 얼굴을 떠난다’는 것은 악인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받게 되는 영광과 기쁨으로부터 단절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는 것은 형벌의 다른 측면을 보여줍니다. 지금 악행을 하는 자들이 성도들을 핍박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는 그 영광 앞에서 그힘은 무력해질 것을 말한 것입니다.
‘멸망’ [올레드로]은 ‘완전히 흔적도 없이 없애버린다’는 의미로 단순한 멸망을 의미하지 않고, 몰락하여 삶의 의미를 완전히 박탈당한 상태를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으로 부터 분리되어 삶의 가치를 모두 잃어버린 상태를 의미합니다. (마 7:23, 눅 13:27)
‘형벌’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켄]은 단순히 범죄자에 대한 형벌을 말하는 [콜라시스]나, 감정에 치우친 형벌 [티모리아]와 다릅니다. [디켄]은 공의에 입각해서 충분히 심리 절차에 따라 이루어진 형벌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형벌은 공의에 따라 이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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