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전서 2장: 16-20
16 우리가 이방인에게 말하여 구원받게 함을 그들이 금하여 자기 죄를 항상 채우매 노하심이 끝까지 그들에게 임하였느니라
17 형제들아 우리가 잠시 너희를 떠난 것은 얼굴이요 마음은 아니니 너희 얼굴 보기를 열정으로 더욱 힘썼노라
18 그러므로 나 바울은 한번 두번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사탄이 우리를 막았도다
19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20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1 Thessalonians 2: 16-20
16 in their effort to keep us from speaking to the Gentiles so that they may be saved. In this way they always heap up their sins to the limit. The wrath of God has come upon them at last.
17 But, brothers, when we were torn away from you for a short time (in person, not in thought), out of our intense longing we made every effort to see you.
18 For we wanted to come to you-certainly I, Paul, did, again and again-but Satan stopped us.
19 For what is our hope, our joy, or the crown in which we will glory in the presence of our Lord Jesus when he comes? Is it not you?
20 Indeed, you are our glory and j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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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전서 2장 /1 Thessalonians 2: 16-20
16 우리가 이방인에게 말하여 구원받게 함을 그들이 금하여 자기 죄를 항상 채우매 노하심이 끝까지 그들에게 임하였느니라
16 in their effort to keep us from speaking to the Gentiles so that they may be saved. In this way they always heap up their sins to the limit. The wrath of God has come upon them at last.
유대인들은 예수가 메시야라는 사실과 구원의 역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에대해 강하게 저항했습니다 (행 13:45-50). 유대인들이 이방인의 구원을 반대하는 이유는 구원을 선택받은 민족인 자신들만의 전유물로 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자기 죄를 항상 채우매’와 유사한 내용은 마태복음 23:32절 입니다. “너희가 너희 조상의 양을 채우라”. 유대인의 조상들은 선지자들을 죽였고 이제 그들도 조상들이 시작한 일을 완성하려 하는 상황입니다.
‘채우매’ [아나플레로사이]는 이미 그들의 죄악의 잔이 가득차서 그 한계에 도달했음을 의미합니다.
‘항상’에 해당하는 헬라어 [판토테]는 하나님의 종들인 선지자들, 그리스도, 사도들을 차례로 핍박하는 박해의 계속성을 강조합니다.
‘노하심’ 은 종말의 진노를 나타내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장차 올 진노를 의미합니다. 본문에서는 부정 과거시제인 [에프다센, 임하였다]를 사용하여 노하심이 이미 과거에 일어났다고 표현합니다.
예수님께서 마 12:28과 누가 11:20 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도래했다고 말씀하셨으나 유대인들은 믿지 않음으로 그 나라를 경험하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하나님의 진노가 그들에게 임했으나 그들에게는 아직 경험되지 않은 상태인 것에 대해 설명한것입니다.
17 형제들아 우리가 잠시 너희를 떠난 것은 얼굴이요 마음은 아니니 너희 얼굴 보기를 열정으로 더욱 힘썼노라
17 But, brothers, when we were torn away from you for a short time (in person, not in thought), out of our intense longing we made every effort to see you.
‘너희를 떠난 것은’ 에 해당하는 헬라어를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너희로부터 고아가 되었다’가 됩니다. 바울이 자신을 고아에 비유하여, 자신이 얼마나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그리워하는지를 표현한 것입니다.
‘마음’ [카르디아]는 ‘감성적인 마음, 감정 혹은 애정의 소재지’를 의미합니다. 바울의 몸은 비록 떨어져 있으나 그의 마음과 애정은 항상 데살로니가 교인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열정으로 더욱 힘썼노라’는 바울이 데살로니가를 떠나있기에 더욱 열렬히 갈망하는 마음으로 힘 썼다는 말입니다.
18 그러므로 나 바울은 한번 두번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사탄이 우리를 막았도다
18 For we wanted to come to you-certainly I, Paul, did, again and again-but Satan stopped us.
‘하였으나’에 해당하는 [에델레사멘]은 ‘원하다, 결심하다’라는 의미입니다. 바울이 데살로이가로 가고자 열렬히 원하고 결심했다는 것입니다.
‘사탄이 우리를 막았도다’ 사단의 활동 목적은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이는 유대인들의 방해 가능성과 바울의 질병일 겁니다. 바울은 이를 ‘사단의 사자’ 라고 표현했습니다 (고후 12:7). 바울은 자신이 세운 계획들에 대한 차질이 단순히 사단의 방해 때문 만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거기에는 성령의 개입이 있었다는 것을 바울은 인식합니다 (행 16:6-10).
19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19 For what is our hope, our joy, or the crown in which we will glory in the presence of our Lord Jesus when he comes? Is it not you?
‘소망’은 데살로니가 교인의 신앙이 성숙하게 자랄 것이라는 기대감에서 온 것입니다. ‘기쁨’은 그들의 믿음의 진정성에서 나옵니다. ‘자랑’은 그리스도 앞에서 그들이 바울의 전도 사역 열매로 나타난다는 확신입니다. ‘자랑의 면류관’은 운동경기의 우승자가 받은 월계관입니다. 바울 자신은 그리스도인의 삶과 사도적 사역을 운동 경기에 자주 비유했습니다(고전 9:25, 갈 2:2).
‘강림하실 때’ ‘강림’의 헬라어 파루시아]는 고위 관리가 어느 지역을 방문할 때 사용한 단어로 , 주로 신적 존재로 추앙받는 황제 같은 지배자가 방문시 사용했습니다. 바울은 [파루시아]를 이런 황제의 망문을 연상하며, 그리스도의 날에 나타날 더 크고 화려한 영광을 나타내려고 이를 사용했습니다.
20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20 Indeed, you are our glory and joy.
바울은 데살로이가 교인들이, 그리스도 앞에서 자신들의 영광이요 기쁨이라고 확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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