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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고린도전서

고린도전서 9장: 24-27

by 갈렙과 함께 2025. 3. 12.

고린도전서 9장: 24-27

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26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1 Corinthians 9: 24-27

24 Do you not know that in a race all the runners run, but only one gets the prize? Run in such a way as to get the prize.

25 Everyone who competes in the games goes into strict training. They do it to get a crown that will not last; but we do it to get a crown that will last forever.

26 Therefore I do not run like a man running aimlessly; I do not fight like a man beating the air.

27 No, I beat my body and make it my slave so that after I have preached to others, I myself will not be disqualified for the pri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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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9장: 24-27

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24 Do you not know that in a race all the runners run, but only one gets the prize? Run in such a way as to get the prize.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영광의 면류관을 얻기 위해서는, 운동 선수들처럼 절제와 노력이 필요하다고 권면합니다. 당시 고린도 지역에는 매 2년마다  ‘이스미안 경기’가 열렸는데, 이는 올림피안 경기, 네미안경기. 피티안 경기’ 와 함께 그리스 4대 경기중 하나였습니다.

 ‘운동장’ [스타디오]는 약 200미터 길이의 단위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이 단어가 경기장 [스타디움] 이라는 의미로 굳어집니다. 당시 그리스 도시들의 경기장은 한 스타디오 (200미터)로 규격화 되었기에 때문입니다.

 

 바울 당시의 운동 경기는 승리하면 상금을 주지 않고 명예를 상징하는 월계관을 수여했습니다. 모든 경주자는 이 명예를 확득하고자 경기에 참가 했습니다. 바울이 하고자 하는 말은, 경기에서 우승자가 질주하듯이 고린도 교인들도 상을 얻겠다는 목적 이외의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그 목표만을 행해 노력하라는 의미입니다.  

 

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25 Everyone who competes in the games goes into strict training. They do it to get a crown that will not last; but we do it to get a crown that will last forever.

 

‘이기기를 다투는 자’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경쟁하다, 격렬히 몸부림치다’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말로 여기서는 경주에 참가하는 모든 사람을 말합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절제’에 해당되는 헬라어 [엥크라튜에타이]는 고대 그리스의 운동 경기자들이 사용하던 전문 용어였습니다. 그들은 보통 10개월 정도의 고된 훈련을 받았고 음식, 오락, 수면 시간 등 모든 일에서 자신을 절제해야 되었습니다.

 

 ‘썩을 승리자의 관’  고린도 지역의 ‘이스미안  경기’에서 승자에게는 월계수나 솔잎, 어린 파슬리로 엮은 화환을 머리에 쒸어주었습니다. 올림피안 경기에서는 우승자에게 야생 감나무 잎으로 엮은 화환을 주었습니다. 이런 나뭇잎으로 만든 승리자의 관은 경기자에게 최고의 영예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금방 시들어 버리고 승리자의 영예도 덧없는 것이 됩니다.

 

‘썩지 아니할 것’ 을 그리스도인은 추구하고 운동 선수의 썩어버리는 허망한 승리관 과는 다른, 영원한 영광의 면류관을 쓰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운동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들에게 뒤지지 않게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며 우리의 목표를 향해 나가야 됩니다.

 

26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26 Therefore I do not run like a man running aimlessly; I do not fight like a man beating the air.

 

 ‘향방 없는’의 헬라어 [아델로스]는 ‘목표없는, 불분명한’ 이라는 의미입니다.  달리기 선수들이 목표와 방향을 분명히 정하고 경기에 임하는 것처럼, 바울 자신도 목표와 방향을 확고하게 인식하면서 신앙 생활을 한다고 말합니다. 

 

 ‘싸우기를’ [피크튜오]는 [퓌그메, (주먹)] 와 [퓌크테스, (권투선수)] 이 합성어입니다. 그러니 이것은 ‘권투시합’을 말합니다. 바울은 여기서 달리기 경주에서 권투 시합으로 비유를 바꾸어서 표현합니다.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는 권투선수들이 시합 하기전에 상대방 없이 혼자서 연습하는 것을 표현한 말로, 전문용어로 [스미 아마키아,( 싸움)] 이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영적인 싸움이 상대방 없는 공허한 것이 아니라 분명한 대적이 있는 싸움이라고 말합니다. 

 

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27 No, I beat my body and make it my slave so that after I have preached to others, I myself will not be disqualified for the prize.

 

 ‘내가 내 몸을 쳐’에서 ‘쳐’에 해당하는 헬라어 [휘포피아죠]는  [휘포 ,(... 아래)]와 [옵스, (눈)]의 합성어입니다. 문자적으로는 ‘눈 아래 부위를 친다’라는 의미입니다. 이는 매우 사실적인 표현으로 권투선수들이 상대방의 얼굴 부위를 공격하는 광경을 묘사한것입니다. 바울은 이런 권투 시합을 연상하며, 자신이 싸울 상대가 자신의 몸이라는 것을 드러냅니다. ‘몸’에 해당하는 [소마]는 고린도전, 후서에서 ‘영’과 상반되는 개념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본절에서는 세속적이고, 육체적인 욕구를 제어하여 그리스도를 섬기기 원하는 자신의 의지를 나타냅니다.  

 

 ‘복종하게 함은 ‘ [둘라고고] 는 ‘둘로스 (종, 노예)]와 ‘아고, (데려오다, 끌고 오다)]의 합성어 입니다. 이는 전쟁에서 승자가 패자를 종으로 끌고 오는 것을 뜻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육체적인 본성 뿐아니라 정신적인 죄의 성향과 욕망 조차도 복종 시키려고 했습니다. 

 

 ‘남에게 전파한 후에’ ‘전파한’ [케뤽사스] 는 [케릭스, (전달자)] 에서 유래한 단어입니다. 

운동 경기에서 ‘전달자’ 의 임무는 경기 규칙을 설명하고 선수들을 소집시키거나 나팔을 불어 시합의 시작을 알리는 일 등을 하였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자신의 모습을 전달자 [퀴뤽스]에 비유했습니다.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 까 두려워함이로다’ 

‘버림’  [아도미모스] 는 ‘도키마조; (조사하다, 시험하다)]에 파생된 말로서 ‘불합격자’의 뜻을 가집니다.  이 단어는 과거 화폐로 사용된 주화의 무게를 달아서 제 무게를 지닌 주화와 그렇지 않은 불량한 주화를 가려내는 것과 관련해 사용하던 단어 입니다. 

바울은 이 단어를 구원에서 제외되는 것을 뜻하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구원받은 자임을 확신하고 있었으나, 구원 얻은 자로서 주님을 마땅하게 섬기지 못할까 두려워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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