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9장: 12-17
12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13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에서 섬기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14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15 그러나 내가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고 또 이 말을 쓰는 것은 내게 이같이 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누구든지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
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17 내가 내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내가 자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사명을 받았노라
1 Corinthians 9: 12-17
12 If others have this right of support from you, shouldn't we have it all the more? But we did not use this right. On the contrary, we put up with anything rather than hinder the gospel of Christ.
13 Don't you know that those who work in the temple get their food from the temple, and those who serve at the altar share in what is offered on the altar?
14 In the same way, the Lord has commanded that those who preach the gospel should receive their living from the gospel.
15 But I have not used any of these rights. And I am not writing this in the hope that you will do such things for me. I would rather die than have anyone deprive me of this boast.
16 Yet when I preach the gospel, I cannot boast, for I am compelled to preach. Woe to me if I do not preach the gospel!
17 If I preach voluntarily, I have a reward; if not voluntarily, I am simply discharging the trust committed to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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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9장: 12-17
12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12 If others have this right of support from you, shouldn't we have it all the more? But we did not use this right. On the contrary, we put up with anything rather than hinder the gospel of Christ.
‘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대부분의 다른 사도들은 고린도 교인들로부터 생계비를 보장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런 권리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이유로 일부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이 다른 사도들 보다 낮은 등급의 사도라서 받지 못한 것으로 오해했다고 언급합니다 (Morris).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처음 세운 자신이, 그 어떤 사람보다도 물질적인 권리를 요구할 권한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바울은 이 권리를 사용하지 않고 ‘범사에 참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신령한 일을 맡아 전하는 이가 물질에 얽매여 산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기 때문에 그런이들이 실족하지 않고 굳건한 신앙생활을 하게 하고자 바울은 자신의 권리를 포기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4:2절에서 말한 ‘맡은 자의 구할것은 충성’ 이라고 하는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고자 한 것입니다.
13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에서 섬기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13 Don't you know that those who work in the temple get their food from the temple, and those who serve at the altar share in what is offered on the altar?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은 제단 위에 드려지고 남은 고기 중 일부를, 자신들의 몫으로 할당 받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율법에서 규정했습니다. (레 7:6, 8-10, 14, 18-36) 그러니 바울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것은 객관적으로 합법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자신의 권한을 자제하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14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14 In the same way, the Lord has commanded that those who preach the gospel should receive their living from the gospel.
하나님께서 구약 시대의 제사장들에 대해서 규정하신 것 처럼, 그리스도께서도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들의 보수에 대해 동일한 규정을 허락하셨습니다.
구약의 제사장들이 성전에서 나는 것으로 생활을 영위하였던 것처럼, 복음을 전하는 자들도 그 복음을 빋는 자들의 헌금으로 생계를 보존하라 것이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바울을 자신의 권리에 대해 명확히 알고 있었으나, 그럼에도 그들에게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15 그러나 내가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고 또 이 말을 쓰는 것은 내게 이같이 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누구든지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
15 But I have not used any of these rights. And I am not writing this in the hope that you will do such things for me. I would rather die than have anyone deprive me of this boast.
바울은 자신이 죽는 한이 있어도 고린도 교인들에게 경제적인 짐을 주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보상없이 복음을 전파함으로, 자신을 의심하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었습니다. 동시에 자신을 대적하는 자들과도 맞서 싸울 힘을 축적했습니다. 물질적인 공급없이 교회를 위해 봉사함으로, 그가 전한 복음의 순수성을 입증하게 되었고, 이는 바울의 자랑이고 영광이었습니다.
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16 Yet when I preach the gospel, I cannot boast, for I am compelled to preach. Woe to me if I do not preach the gospel!
‘자랑할’ [케우케마]는 ‘자신이 취한 행동에 대하여 도덕적인 가치를 느끼고 , 그로 인해 갖게 되는 즐거운 감정’을 의미합니다 (Heinrici). 사도 바울이 선교 사역을 감당한 것은 그 일을 통해서 갖게 된 즐거움과 보람 때문이 아닙니다. 그 사명이 그리스도로부터 주어진 것이었고 ( 26:16-18, 갈 1:1, 빌 1:16), 그가 반드시 하지 않으면 않되는 일로 인식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예수(행 9:1-9)와 성령(행 13:2)에 사로 잡혀있었고, 날마다 주의 계시에 민감하였습니다 (행 22:21). 그가 복음 전파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만 가능했습니다.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소명에 대한 바울의 태도는 다른 사도들과 큰 차이점이 있습니다. 12 사도들은 자발적인 믿음으로 그들의 소명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오히려 믿는 자들을 박해하는 완악한 불신앙 가운데서 부르심을 받았으며 그 소명은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강압적인 역사였습니다 (행 9:5, Godet)
17 내가 내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내가 자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사명을 받았노라
17 If I preach voluntarily, I have a reward; if not voluntarily, I am simply discharging the trust committed to me.
바울의 주장대로라면, 자발적인 선택으로 복음을 전파하면, 그것은 자랑할 만한 것이고 그에게 상이 되었을 것입니다. ‘상’ [미스도스]는 ‘보상, (reward)’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의 의지와 무관하게 그리스도로부터 강압적으로 복음 전도의 소명을 부여받았기에 어떤 자랑이나 보상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는 보상을 바라지 않고, 단순히 자신에게 부여된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행 26:16).
‘ 나는 사명을 받았노라’ 이 내용의 헬라어 문자적인 의미는 ‘청지기직을 부여받았다’ 입니다.
’청지기’ (steward)는 ‘자유인’ (freeman)이 아니라 노예 계급에 속했습니다. (눅 12:42,43). 노예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완수했다고 해도 아무 보상을 기대할 수 없는 처지입니다.
다만 그들이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면 엄한 처벌 만 따를 뿐입니다.
그러므로 본절은 바울이 자신의 사도직을 수행할 때 ‘나는 노예로서,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주어진 일을 수행 할 뿐이고 그 이상은 아니다’라는 입장을 견지했음을 보여줍니다. 바울이 자신의 사명에 대해 이런 겸손한 태도를 취한 것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근거합니다 (눅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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