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장: 17-20
17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9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20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1 Corinthians 1: 17-20
17 For Christ did not send me to baptize, but to preach the gospel-not with words of human wisdom, lest the cross of Christ be emptied of its power.
18 For the message of the cross is foolishness to those who are perishing, but to us who are being saved it is the power of God.
19 For it is written: 'I will destroy the wisdom of the wise; the intelligence of the intelligent I will frustrate.'
20 Where is the wise man? Where is the scholar? Where is the philosopher of this age? Has not God made foolish the wisdom of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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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장: 17-20
17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7 For Christ did not send me to baptize, but to preach the gospel-not with words of human wisdom, lest the cross of Christ be emptied of its power.
바울은 고린도에서 특수한 경우에만 세례를 베풀었는데 그 이유는, 새신자들이 너무 초보적인 교리문답 정도의 단계에 있어서 아볼로에게 (행 19:1) 추후 적당한 때 세례를 주도록 맡겼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Mare).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일이 가장 본질적이 사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말의 지혜에 해당하는 헬라어 [소피아로구]는 말의 명석함’을 의미합니다. 당시 고린도의 일부 신자들은 인간의 지혜와 달변을 지나치게 높게 평가하였습니다. 그들은 전형적인 헬라인으로 수사학과 철학 연구에 지나치게 매몰되어 있었습니다. 바울은 ‘말의 지혜’로 복음을 전하는 것은 자신이 받은 사명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에서 ‘헛되다’ [케노데]는 이름과 형식만 남고 내용은 없어진 상태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능력을 나타내지 않고 이를 무력하게 하거나 효력없는 상태로 되게 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인간의 지혜나 인본주의적인 철학으로 십자가의 능력을 대치하는 어리석은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8 For the message of the cross is foolishness to those who are perishing, but to us who are being saved it is the power of God.
‘십자가의 도’는 헬라어 [호 로고스 호 투스타우루]인데 ‘십자가의 말씀’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는 앞절의 ‘말의 지혜’와 대조되어 사용했습니다. 바울은 성도들이 인간의 말과 지혜에 지나치게 찬사를 보내는 것은 잘못임을 일깨워줍니다. 그가 말한 ‘십자가의 도’는 십자가에 관하여 전하는 말로서 십자가를 통하여 인류가 구원을 받게 되는 진리를 의미합니다.
‘멸망하는’, ‘구원을 받는’은 헬라어에서 둘다 분사형으로 사용되어 그 행위에 대한 즉각적인 결과가 계속 일어난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이는 ‘멸망하고 있는자에게’와 ‘구원을 받고 있는 우리에게’라는 의미입니다.
바울은 구원을 과거의 사건 (롬 8:25), 현재의 상태 (엡2:5), 과정(고전 15:2), 미래의 결과 (롬 1:9)로 묘사합니다. 구원이 단편적이거나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계속적인 과정임을 설명해줍니다. ‘구원을 받는 자’들이 복음에 반응을 보이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고 설명합니다.
‘능력’ [뒤나미스]는 신체적, 영적, 지적 능력을 포함한 총체적 능력을 말하는데, 헬라 문명권에서는 우주의 원리로서 생명력을 의미했습니다. 신약 성경에서는 [뒤나미스]를 그리스도와 밀접하게 연결하여 사용하였고 본절에서는 인간의 구원이 오직 하나님의 초월적인 힘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19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19 For it is written: 'I will destroy the wisdom of the wise; the intelligence of the intelligent I will frustrate.'
이사야 29:14을 인용한 것입니다. 인간이 입술로만 경배하고 마음은 멀리 떠났으므로 (사 20:13) 인간의 지혜와 총명이 가려집니다. 바울은 이를 사용하여 자신의 독특한 방법으로 논리를 전개합니다. ‘지혜’는 뛰어난 마음의 상태이고 ‘총명’는 어떤일을 분별할 수 있는지적 판단력으로 거의 의미가 유사합니다. 이것들은 인간이 나타낼수 있는 능력이지만, 만약 하나님께서 이를 없애버리신다면 인간의 지혜와 총명은 매우 한시적인 것이고 그 근거가 어디로부터 온것인지를 다시 생각해봐야 되는 것입니다.
20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20 Where is the wise man? Where is the scholar? Where is the philosopher of this age? Has not God made foolish the wisdom of the world?
‘지혜있는 자’는 본절에서는 헬라인을 염두에 두고 한 말입니다 (22절). ‘선비’ [그람마튜스] 는 서기관이나, 율법을 가르치는 자라는 말합니다. ‘변론가’ 는 무슨 문제든지 인간의 이성으로 해결하는 자를 말하는데 본절에서는 지적인 노력으로 구원을 얻으려는 유대인들과 헬라인을 동시에 말한 것입니다.
‘세대’ [아이오노스]와 ‘세상’ [코스무]는 거의 동의어로, 정연한 배열을 의미하는데, 나중에는 비기독교적인 세계를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그를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신 그리스도의 사역은 이 세상의 지혜와 다릅니다. 바울은 이를 염두에 두고 말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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