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3장: 1-4
1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2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3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4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갈라디아서 3장: 1-4
1 You foolish Galatians! Who has bewitched you? Before your very eyes Jesus Christ was clearly portrayed as crucified.
2 I would like to learn just one thing from you: Did you receive the Spirit by observing the law, or by believing what you heard
3 Are you so foolish? After beginning with the Spirit, are you now trying to attain your goal by human effort?
4 Have you suffered so much for nothing-if it really was for no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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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3장: 1-4
1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1 You foolish Galatians! Who has bewitched you? Before your very eyes Jesus Christ was clearly portrayed as crucified.
‘어리석도다’ 의 헬라어 [아노에토이]는 돌이킬수 없는 죄에 대해 책망하는 것 보다는 죄를 분별할 능력이 되면서도 그 능력을 사용하지 않는 것을 책망하는 것입니다 (롬 1:14, 딤전 6:9, 딛3:3). 바울은 매우 준엄하고 냉정한 태도로 갈라디아 교인을 질책합니다.
바울이 갈라디아를 처음 방문했을 때, 복음의 진리를 선포하고 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전파했습니다. 그 의미가 너무나 선명해서 마치 공중 게시판이나 그림으로 볼수 있듯이이 제시했었습니다. 바울은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 [에스타우로메노스]를 분사 완료형으로 기록하는데 그 의미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사건이 과거에 이미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눈 앞에 밝히 보인다’는 것은 그 십자가의 공로와 효과가 지금도 여전히 지속적으로 적용된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고전 2:2, 10). 그 지속성은 갈라디아 교인을 비롯하여 오늘날 성도들을 포함하여 복음의 핵심을 듣고 믿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누가 너희를 꾀더냐’ 에서 바울이 문제 삼는 것은 교인의 마음을 혼란케한 거짓교사가 누구냐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분명히 가르쳐준 복음의 핵심을 어떻게 잃어버릴 수 있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2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2 I would like to learn just one thing from you: Did you receive the Spirit by observing the law, or by believing what you heard
‘율법’ [헬라어 [노모스]는 구원에 이르는 수단으로, ‘믿음’과 상대되는 개념으로사용되었습니다. 율법은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로서의 역할을 할 따름입니다. 그런제 갈라디아늬 율법주의자들은 오히려 율법을 중요시 여기고 율법의 행위를 강조했습니다.
바울은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라고 양자 택일의 문제를 제시합니다. ‘듣고 믿음’은 십자가 부활의 역사적 사건에 대한 반응입니다. 바울은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롬 10:14-17). 베드로도 믿음이 들음에서 난다는 것을 주장하고 전파하는 자의 소명이 중요하다는 것은 강조했습니다. (행 15:7). ‘들음’은 전파하는 자와 성령의 사역으로 되어지는 것이기에 불완전한 인간이 행하는 행함으로는 비교할 수 없는 은혜로 가능한 것입니다.
3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3 Are you so foolish? After beginning with the Spirit, are you now trying to attain your goal by human effort?
‘육체 [사륵스]는 두가지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할례를 자랑으로 여기는 자들이 자랑하는 인간의 신체를 가리킬 때 사용되었고 (6:13), 성령의 하시는 일과 대조를 이루는, 육적 자아를 십자가에 못박은 성도가 어떻게 그 육체적 자아로 돌아갈수 있느냐라는 것 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리스도로 인하여 새 생명을 얻은 성도는 성숙한 신앙의 열매 (5:22-23)를 맺기 위해 정진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마땅하고, 다시는 율법의 종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4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4 Have you suffered so much for nothing-if it really was for nothing?
‘괴로움’의 헬라어 [에파데테]는 ‘파스코’의 부정 과거 형태입니다. ‘파스코는 ‘선한 혹은 악한 경험을 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성경에서 주로 ‘고난을 당하다, 괴로움을 받다’라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악한 경험’은 박해를 받은 것에 대한 것으로 바울과 바나바가 남 갈라디아 지방에서 교회를 세울때 받은 고난을 의미합니다 (행 13:50, 14:2). 바울은 지금 유대주의자들로부터 받은 모든 박해를 회상하고 있습니다.
‘축복받은 선한 경험’은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심 (3절)과 갈라디아 인들에게 능력을 행하심 (5절), 긍정적이고 여러 영적 경험에 대해 언급한 것입니다.
‘헛되냐’ 의 헬라어 [에이케]는 ‘아주 보잘것 없는 무가치한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믿음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갈라라디아인들이 믿음에서 떨어져나간 상태로 살게되면, 그들을 부르신 하나님의 사역과 성령의 풍성한 은사, 바울의 수고는 모두 헛된 것이 될것이고 그들은 무가치한 상태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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