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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요한1서

요한1서1장: 1-4

by 갈렙과 함께 2026. 8. 10.

요한1서1장: 1-4

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2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4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1 John 1: 1-4

1 That which was from the beginning, which we have heard, which we have seen with our eyes, which we have looked at and our hands have touched-this we proclaim concerning the Word of life.

2 The life appeared; we have seen it and testify to it, and we proclaim to you the eternal life, which was with the Father and has appeared to us.

3 We proclaim to you what we have seen and heard, so that you also may have fellowship with us. And our fellowship is with the Father and with his Son, Jesus Christ.

4 We write this to make our joy comple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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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1서1장/ 1 John 1: 1-4

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1 That which was from the beginning, which we have heard, which we have seen with our eyes, which we have looked at and our hands have touched-this we proclaim concerning the Word of life.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이 영원 전에 선재하였음을 암시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하나이시며 영원 전부터 선재하셨습니다. (요 10:30, 13:3). 복음이 하나님께 속하여 태초부터 존재하였음을 나타냅니다.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헬라어 본문에는, 주어절이 문장의 맨 끝에 나옵니다. ‘태초부터 있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라는 네개의 관계절을 수식합니다. 요한은 이런 매우 복잡한 표현을 통해서, 자신의 강렬한 감정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말씀’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 됩니다.

 (1) 영원하시고 인격적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현현을 의미합니다.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2) ‘복음’을 의미합니다. ‘생명의’ 헬라어 [조에스]는 ‘말씀의 내용’ (행 5:20, 빌 2:16)을 의미하고, ‘생명을 얻게 하는 것’ (요 8:12, 6:35, 계 21:6, 22:1)을 가리킵니다. 이 두 가지 의미는 서로 상호 보완적입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이신 예수님에 대한 본질적인 선포입니다.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들은 바요’ [아케코아멘]와 ‘본 바요’ [헤오라카멘]은 완료 시제입니다. 이는 생명의 말씀이 예수님 안에서 마침내 실현되었으며, 그것을 사도들이 예수님께서 설교하실 때 들었고, 예수님께서 사역하실 때 눈으로 보고 확인했음을 의미합니다(히 1:1-2).

이 ‘들은’과 ‘본’것은 요한 복음에서 ‘믿음’과 연결됩니다 (요 10:27, 20:29).

 

‘만진 바라’의 헬라어 [여살라페산]은 부정과거 시제로, 과거 한 때 직접 만져서 느낀 것을 가리킵니다. 요한은 ‘들은 바요, 본바요, 만진 바라’ 라는 표현을 통해서 생명의 말씀이신 그리스도 께서 성육신하여 역사 속에 현현하신 하나님을 나타냈습니다. 그 분의 사역과 설교를 통해 자신 안에 실현될 복음을 전파하셨다고 강조합니다.

 

2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2 The life appeared; we have seen it and testify to it, and we proclaim to you the eternal life, which was with the Father and has appeared to us.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생명’으로 번역된 헬라어 [헤 조에]는 1절 처럼 예수님 자신의 존재와 그 분의 복음을 가리킵니다. 

‘나타나신 바’는 예수님의 지상 사역을 의미합니다. 그 분의 성육신 되심과 십자가상의 죽음과 부활을 가리킵니다. 이는 인간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인 ‘생명’이 역사적으로 예수님 안에서 계시되었음을 나타냅니다. 또한 이는 하나님께서 친히 계시하시지 않는 한, 인간이 알수 있는 방법이 없음을 암시합니다.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보았고, 증언하고, 전하노니’ 세 동사를 통하여 , 경험의 세 측면을 부각시킵니다. ‘보았고’의 헬라어 [헤오라카멘]은 그 진의와 중요성 정도를 파악하기 위해 ‘살펴본다’는 의미가 있으며 , 요한의 개인 적인 경험을 나타냅니다. ‘증언하여’ 는 요한 자신이 경험한 내용을 개인적으로도, 사도로서 공적으로도 선포하였음을 나타냅니다.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헬라어 본문에는 본문 바로 앞에 ‘영원한 생명’ [텐 조엔 텐 아이오니온]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절은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라는 의미입니다.. ‘생명’을 ‘영원한 생명’으로 강조하고, 생명의 결정적 근원으로 ‘아버지와 함께’를 제시했습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생명’은 생명의 길이가 영원함을 의미하는 것 보다는, 그 생명이 가진 신적인 성격을 나타낸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3 We proclaim to you what we have seen and heard, so that you also may have fellowship with us. And our fellowship is with the Father and with his Son, Jesus Christ.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본절은 요한이 생명의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전하는 궁극적인 목적을 제시합니다. 그 목적은 ‘사귐’입니다. 요한이 ‘사귐’을 목적으로 한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이 행위로 표현되어야 된다는 자신의 사상과 연결됩니다 (2:3)

‘사귐 [헤 코이노니아]는 문자적으로 ‘공동 소유’, ‘협동’을 의미하나, 본절에서는 마게도냐와 아가야의 그리스도인들이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해 공동 자금을 모금한 ‘서로 나눔’의 의미도 포함합니다 (롬 15:27, 고전 9:23, 고후 13:13)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그리스도인의 ‘사귐’의 본질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것’임을 분명하게 제시합니다. 그 사귐은 완전한 인간으로 오셨고, 영원한 생명이시며, 동시에 온전히 하나님과 하나이신 ‘예수 그리스도’ 와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임을 나타냅니다. 

 

4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4 We write this to make our joy complete.

 

요한복음 15:11을 반영했습니다. ‘기쁨’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사귐’, 이며,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하는 사귐의 결과 이며, 동시에 성령의 열매입니다 (갈 5:22).

이런 기쁨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와의 사귐을 전제로 합니다. 그러나 아직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와의 ‘사귐’에서 오는 기쁨을 온전히 다 누리기에 그리스도인들은 많이 부족합니다. 그렇지만, 이 기쁨의 소망을 가지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서로 헌신적인 사귐을 통해 ‘기쁨’으로 나아가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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