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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요한복음

요한복음 3장: 16

by 갈렙과 함께 2024. 7. 13.

요한복음 3장: 16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John 3: 16

16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e and only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all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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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3장: 16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6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e and only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all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요한복음 3장 16절은 ‘복음서 속의 복음’(The Gospel within the Gospels)  혹은 작은 복음서 (The Gospel) 라고 불립니다. 신구약 성경을 대표할수 있는 요점을 기록한 복음의 진수입니다. 복음이 담고 있는 모든 계시의 말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독생자를 주신 이유가 ‘사랑’ 이심을  알게 합니다.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세상’ [코스모스]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포함한 온 인류를 말합니다. 유대인의 전통 사고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선택된 이스라엘 민족 만을 사랑하신다고 하나님의 사랑의 범위를 제한합니다. 실제의 하나님은 민족이나 지위고하 상관없이 모든 인류를 사랑하신다고 요한은 말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보편적으로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언제나 개방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믿음이 전제됩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신 이유는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랑 [아가페]는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주도하셔서, 우리에 앞서 먼저 베풀어 주시는 사랑입니다. 인간의 연약함과 인간의 죄성을 다 이해하고 다 감싸 주시는 사랑입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본성입니다 (요일 4:8) .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통하여 절정에 이릅니다. 

 

 예수님은 본질상 하나님과 동등하십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성육신하여 인간의 삶 가운데로 내려오셨습니다. 우리 가운데 생을 보내시고 마침내 십자가에서 수난받고, 인류를 죄악에서 구원 하셨습니다. 이 역사적 사실은 하나님의 사랑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신 것입니다. 인류를 위해 대속의 어린 양이 되신  예수님의 이 사랑은 자발적인 희생이었습니다. 

 

  ‘독생자’ 라는 표현은 우리들이 생각하는 부자간의 육적인 관계와는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이는 부자간의 관계가 특별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용어로서 사용되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영원 전부터 독생자로 존재하시던 성자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신 유일무이한 특별한 행사입니다.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며 영원 전부터 계시는 하나님의 독생자’ 이십니다 (루터).

 

 독생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모노게네스]는 ‘외 아들’이라는 의미 외에 ‘유일무이 하신 분’이라는 의미도 포함됩니다. ‘아들’ [휘오스]는 요한 복음에서는 주로 그리스도에 대해서만 사용된 단어입니다. (3:16, 36, 5:20)

 

  ‘주셨으니’ [디도미] 는 ‘보내다’ (send)와 ‘넘겨주다’( hand over), ‘값을 지불하다 (pay)는 의미가 있습니다. 본절에서 이 말씀은 성육신 (incarnation)을 의미하고 십자가에 달리심 (crucifixion) 까지도 의미합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 하심은 믿는 자들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목표가 있습니다. ‘영생’ 과 ‘멸망’ 사이에는 다른 중립적인 선택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단지 둘중 하나만을 선택할 뿐입니다.

 

‘멸망하다’ [아폴뤼미] 에는 두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1) ‘잃다, 상실하다’ (to be lost).  

 (2) ‘없어지다, 파괴되다’ (to perish, be destroyed) .

이 동사는 생명과 반대되는 ‘죽음’을 나타낼때 (막 3:6)와, 존속되는 것과 반대되는 ‘상실’을 의미할 때 (요이:8절)에 사용되었습니다.  본절에서는 하나님의 품을 떠나 살아가는 자들이 결국은 절망하고 파멸에 이르게 된다는 것은 암시합니다. 그들의 모든 수고와 노력은 허탄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다는 것은 죽음과 멸망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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