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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요한복음

요한복음 3장: 17-21

by 갈렙과 함께 2024. 7. 15.

요한복음 3장: 17-21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8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21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John 3: 17-21

17 For God did not send his Son into the world to condemn the world, but to save the world through him.

18 Whoever believes in him is not condemned, but whoever does not believe stands condemned already because he has not believed in the name of God's one and only Son.

19 This is the verdict: Light has come into the world, but men loved darkness instead of light because their deeds were evil.

20 Everyone who does evil hates the light, and will not come into the light for fear that his deeds will be exposed.

21 But whoever lives by the truth comes into the light, so that it may be seen plainly that what he has done has been done through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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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3장: 17-21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7 For God did not send his Son into the world to condemn the world, but to save the world through him.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과 자비로운 용서와 구원은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반응하는 인간의 태도에 따라 그 하나님의 심판과 자비하심이 드러납니다. 하나님은 항상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딤전 2:4). 이 일을 위해 독생자를 십자가에 희생시키며 인류를 구원하려 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불순종과 완악함은 스스로 그 구원의 문을 막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했습니다. 

 

  ‘심판하다’ [크리노]는 ‘선과 악을 분별하다 (discriminate)’ 와 ‘분리하다 (separate) 와 ‘정죄하다 (condemn)의 의미가 있습니다. 여기서는 정죄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구원을 받게’는 ‘영생을 얻는 것’과 동의어로 사용되었습니다.  ‘구원’ [소테리아]는 아주 무서운 멸망의 위기에 빠진자를 구출해 주는 행위를 말합니다. 본 절에서는, 불의한 삶에서 오는 모든 불안과, 죄책에서 죄인인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해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성도들은 죄에서 벗어나고, 죄사함과 의롭다하심 (justification)을 받게 되고,  거룩한 성화의 삶을 오늘 살아갑니다. 미래에도 하나님 앞에서 평강과 기쁨안에 영생하게 될 것입니다. 

 

18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18 Whoever believes in him is not condemned, but whoever does not believe stands condemned already because he has not believed in the name of God's one and only Son.

 

 요한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독생자 예수님이 오신 목적이 ‘구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은 엄중하고 두려운 심판을 받게 될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마지막 심판을 기다릴 것도 없이 현실에서 벌써 심판 가운데 처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모든 인간은 아담의 후예이므로 원죄와 자신의 범죄로 인해 영원한 형벌에 처해질  운명이었습니다. 그러니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으면, 자연히 멸망과 정죄 가운데 있게 됩니다. 

 

  ‘심판을 받은’은 헬라어 완료시제를 사용하었는데, 이는 심판이 과거에 시작되었고, 그 판결은 지금까지도 유효하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불신자들은 장차 있을 종말론적인 대심판을 받기도 전에, 이미 죄인으로서의 삶 (정죄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진리 안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죄에 속박되어 죄에게 종노릇하고 있습니다. 

 

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19 This is the verdict: Light has come into the world, but men loved darkness instead of light because their deeds were evil.

 

  ‘빛 의 헬라어 [포스]는 달빛이나, 불빛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태양 빛’을 의미합니다. 요한은 이 단어를 주로 그리스도에게 적용하여 사용하였습니다.  이 빛은 ‘유일한 빛’ (the light), ‘참 빛’이신 그리스도를 지칭합니다. 

 

  ‘어두움’의 헬라어 [스코토스]는 빛과 반대되는 완전한 어두움입니다. 단순히 어두운 밤의 상태와는 다른 것입니다. 어두움 속에 처한 자는 빛의 존재를 경험하지 못했기에, 빛 자체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외부에서 빛이 비추어 들어올 때만 그 빛의 존재를 인정합니다. 하지만, 빛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것과 그 빛을 자기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 

‘더’로 번역된 헬라어 [말론]은 ‘더 많이’라는 비교급으로 사용된 것이 아닙니다. 부정적인 의미에서 ‘ ~보다 도리어’ ‘오히려’ (rather)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본절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빛’의 삶보다는, 오히려 하나님과 단절된 ‘어두움’의 삶을  사랑하여 선택한 것을 말합니다.

 

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20 Everyone who does evil hates the light, and will not come into the light for fear that his deeds will be exposed.

 

  사람들이 죄악된 길을 택하여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하고 심지어 더 능동적으로 악행’을 저지르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인간의 본성 자체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택하고, 죄에 오염될 수록 더욱 더 죄악을 향해 가속도가 붙게 됩니다. 

 

  ‘드러날까 함이요’

‘드러날까’의 헬라어  [엘렝코]는 ‘죄를 깨닫게 하다’ (convince), ‘밝히 드러나다, 혐의를 두다’,  ‘교정하다’(correct) 등의 의미가 있습니다.  악을 행하는 자는 죄를 감추고, 이미 지은 그의 죄에 대해서도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죄가 드러날까 빛으로 나아가지 않고 어두움 속에 머물려고 합니다. 

 

21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21 But whoever lives by the truth comes into the light, so that it may be seen plainly that what he has done has been done through God.'

 

  ‘ 진리를 따르는 자’는 진리 안에서 행하는 자’ 입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그 신앙의 열매를 (마 3:8, 10) 맺습니다. 참된 기독교인은 신앙과, 삶의 실천이 일치하는 사람입니다. 

‘진리’라는 의미는 폭넓게 사용되지만, 요한이 말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연합과 관련된 내용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진리’를 말합니다. 이 진리의 빛이 죄악으로 어두워진 인간의 심령을 뚫고 들어오면 회개와 전인적인 삶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빛으로 오나니’ 는 ‘빛에게로 나아오다’라는 의미입니다. 사람이 빛되신 하나님께로 나아오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사람이, 원래 자신을 만드신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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