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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요한복음

요한복음 9장: 1-7

by 갈렙과 함께 2024. 9. 1.

 요한복음 9장: 1-7

1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2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4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5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6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7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John 9 :1-7

1 As he went along, he saw a man blind from birth.

2 His disciples asked him, 'Rabbi, who sinned, this man or his parents, that he was born blind?'

3 'Neither this man nor his parents sinned,' said Jesus, 'but this happened so that the work of God might be displayed in his life.

4 As long as it is day, we must do the work of him who sent me. Night is coming, when no one can work.

5 While I am in the world, I am the light of the world.'

6 Having said this, he spit on the ground, made some mud with the saliva, and put it on the man's eyes.

7 'Go,' he told him, 'wash in the Pool of Siloam' (this word means Sent). So the man went and washed, and came home se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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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한복음 9장: 1-7

1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1 As he went along, he saw a man blind from birth.

 

  2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2 His disciples asked him, 'Rabbi, who sinned, this man or his parents, that he was born blind?'

 

  인간의 질병이나 불행이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온다는 것은 성경의 내용으로 보아 확실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본인의 죄악에서 기인하지 않는 불행이나 고통도 있으니 그것 역시도 하나님의 뜻에 기인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묻는 질문은 진리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3 'Neither this man nor his parents sinned,' said Jesus, 'but this happened so that the work of God might be displayed in his life.

 

이 말씀은 나면서 부터 소경이 된것이 하나님의 하실일을 위해 계획된 불행이라는 듯 들릴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그 사람의 불행을 하나님께서 계획하셨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 말씀의 진정한 의미는 이것입니다. 이 불행한 상태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실 일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불행을 극복하게 하시고, 그것을 고쳐서 오히려 복이 되게 하시는 사랑과 능력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사람들은 불행한 자를 보면 그들을 피하고 저주하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을  따뜻하게 상대하시고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니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은 (1) 이제 예수님께서 장님을 고쳐주시는 은혜로 하나님의 일을 하셨고 (2) 고침을 받은 자가 그리스도를 믿게 됨으로 하나님의 일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불행과 고통은 오히려 하나님의 일을 증진시킵니다. 그것을 극복하는 데는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Marcus Dods) 

 

4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4 As long as it is day, we must do the work of him who sent me. Night is coming, when no one can work.

 

‘낮’은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신 기간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니 영원토록 선을 행하시나 이 세상에 계실 때 하셔야 될 일이 따로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분은 이런 사명을 실천할 기회를 놓치지 않으셨습니다. 그 분은 이 낮의 시기가 지나면, 밤처럼 일할 수 없는 시기가 온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우리 사람들이 이 땅에 있는 시기도 낮처럼 소중한 시간입니다. 이 때는 우리도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귀한 시간입니다. 이 땅에서의 기회는 인간에게 오직 한번만 주어지는 시간입니다. 

 

5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5 While I am in the world, I am the light of the world.'

 

6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6 Having said this, he spit on the ground, made some mud with the saliva, and put it on the man's eyes.

 

7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7 'Go,' he told him, 'wash in the Pool of Siloam' (this word means Sent). So the man went and washed, and came home seeing.

 

 예수님께서 선천적으로 소경인 자를 고치신 것은 예수님이 창조적 권능을 지니신 하나님의 아들이시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빛을 소유하시고 눈을 밝히는 권능을 행하시기 위해서 먼저 자신이 누구 이신지를 알려주십니다.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다”

이 말씀은 영적의미를 지닌 폭넓은 말입니다. 예수님은 소경을 고치는 빛이시며, 동시에 영적 소경된 자들을 고쳐주시는 영생의 빛이십니다. 예수님은 이런 의미에서 먼저 자신의 존재를 명확히 알려주셨습니다. 이 소경도 눈을 뜨게 하신 이 분이 누구신지 명확히 알아야 됩니다. 그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알고 믿을 때 참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눈을 뜨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바로 아는 것입니다.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예수님의 이 행동을 두고, 침이 안질에 효과적이다, 자연치료법이다 등등 말하는 사람들도 있느나, 예수님의 의도는 그것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1) 그 분은 어떤 피조물을 가지고라도 당신의 능력을 행하실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2) 진흙은 예수님의 인간성을 비유하고, 침은 그분의 말씀의 신성을 비유 합니다. 

(3) 하나님 아버지께서 맨 처음에 사람을 만드실 때 흙을 이용하신 것처럼, 예수님도 동일한 원리로 소경의  눈을 고치신다는 의미입니다. 

(4) 그렇지만 이 모든 것과 함께, 예수님은 이 소경의 믿음을 시험하고자 하셨습니다. 소경은 본래 보지 못하던 자였는데 그의 눈에 진흙을 발라 그가 더욱 불편함을 느끼게 하시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끝까지 예수님을 신뢰하는 지 보고자 하셨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신뢰했고 그 모든 불편을 이기고 실로암에 가서 씻었습니다.  이는 마치 엘리사가 나아만 장군에게 요단강에 가서 일곱번 물에 몸을 담그게 하여 나아만의 문둥병을 고치신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 (왕하 5: 10-14)

 

‘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실로암은 예루살렘 동남쪽에 있고 예루살렘성 안에 있습니다. 히스기야 왕이 예루살렘이 포위될 경우 식수를 확보하고자, 전쟁을 대비해 만든 연못입니다.  실로암의 히브리 원어는  [쉴로아크]이고  ‘보냄을 받았다’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소경을 굳이 실로암 못으로 보내신 목적은 ‘보내심을 받은’ 예수님이 그 소경의 눈을 고쳐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가식적 행위를 중시하며, 요란스러운 종교행위를 유지했습니다. 그러나 참된 신앙은 오직 성령의 인도로  고요히 흘러가는 생수같은 진리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왕상 19:12) 유대인들은 이를 좋아하지 않고 자신들 마음대로 하려고 했습니다.

 

“이 백성이 천천히 흐르는 실로암 물을 버리고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을 기뻐하니 그러므로 주 내가 흉용하고 창일한 하수 곧 앗수르 왕과 그의 모든 위력으로 그들 위에 덮을 것이라 그 모든 골에 차고 모든 언덕에 넘쳐 흘러 유다에 들어와서 창일하고 목에 까지 미치리라” (이사야 8: 5-8)

예수님 시대에도 유대인들은 실로암 물로 상징된 여호와 하나님의 종교를 반대하는 의미로, 예수님의 기적에 대한 그들의 불신앙을 드러내고 논란을 일삼았습니다 (14-34절). 이제  예수님께서 실로암에 가서 씻게 하는 이 과정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을 믿던 유대인들의 종교가 ‘보내심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로 대표될 것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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