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4장: 15-19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16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17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
18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 서리요
19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
1 Peter 4: 15-19
15 If you suffer, it should not be as a murderer or thief or any other kind of criminal, or even as a meddler.
16 However, if you suffer as a Christian, do not be ashamed, but praise God that you bear that name.
17 For it is time for judgment to begin with the family of God; and if it begins with us, what will the outcome be for those who do not obey the gospel of God?
18 And, 'If it is hard for the righteous to be saved, what will become of the ungodly and the sinner?'
19 So then, those who suffer according to God's will should commit themselves to their faithful Creator and continue to do 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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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 4장/ 1 Peter 4: 15-19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15 If you suffer, it should not be as a murderer or thief or any other kind of criminal, or even as a meddler.
그리스도인이 받는 고난은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받는 것이어야 됩니다. 세상에서의 잘못 때문에 고난을 받아서는 안됩니다.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악행으로 받는 고난은 결코 그리스도의 영광이 아니며, 그 악행 자체는 형벌을 받아 마땅한 것이므로 그리스도의 고난과는 별개의 것입니다.
‘...로’ [호스]는 앞의 세가지 범죄와 다음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 사이를 분리하여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를 강조합니다.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는 ‘남의 것을 탐내는 사람’이나, ‘금지된 일을 하는 자’ 혹은 ‘밀고자’를 말합니다. 이런 자들이 받는 고난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한 것도,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받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런 일로 인해 고난을 받지 않도록 주의해야 됩니다.
16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16 However, if you suffer as a Christian, do not be ashamed, but praise God that you bear that name.
‘그리스도인으로’는 ‘그리스도의 고난’ 즉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받는 고난’을 말합니다 (13절). 신약성경에 ‘그리스도인’은 자주 사용되는 표현은 아니지만 (행 11:26, 26:28), 예수를 믿는 자들을 가리켰습니다. 처음에는 ‘제자, 형제, 성도’라는 호칭이 사용되다가, 안디옥에 교회가 설립되었을 때 당시 신자들에게 ‘그리스도인’이라는 칭호가 처음으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아그립바는 그리스도인을 경멸할 때 사용하였고 (행 26:28), 초기에는 주로 신자들을 박해할 때 사용된 것으로 추측됩니다. 신약성경 기록 당시에는 보편적 단어가 아니었으나, A.D. 64년경 까지 로마에서 신자들 사이에 이 말의 적합성을 깨닫고 그들 스스로 보편적으로 사용하였습니다 (행 11:19-26)
17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
17 For it is time for judgment to begin with the family of God; and if it begins with us, what will the outcome be for those who do not obey the gospel of God?
‘하나님의 집’은 교회를 가리킵니다(고전 3:16, 딤전 3:15, 벧전 2:5). 구약 시대 선지자의 예언에 하나님의 심판이 성소에서 시작된다고 했습니다 (렘 25:29, 겔 9:6, 말 3:1-6). 그리스도인들이 고난을 받는 것 때문에 이미 심판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으나 (마 24:8-9), 이 심판은 멸망당할 심판이 아니라, 마지막 날에 아무도 피할 수없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절은 종말의 모습이 먼저 그리스도인에게 임해서 성결케하고 , 다음에 확장될 것이라고 표현합니다. (숙 13:7-9, 말 3:1-5).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
그리스도인들도 심판을 받는데 하물며 악인들은 어떠하겠습니까? 이 심판 앞에서는 아무도 피할 수 없습니다. 베드로는 앞서 언급한 ‘하나님의 집’과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을 대조시킵니다. 하나님의 복음에 순종하는 하나님의 집도 심판을 받기 때문에, 하나님의 복음에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더 크고 분명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세상에 선포된 그리스도인의 메시지’로 (막:15,롬 1:1, 살전 2:2, 8,9),이런 복음에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심판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살후 1:5-10).
18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 서리요
18 And, 'If it is hard for the righteous to be saved, what will become of the ungodly and the sinner?'
잠언 11:31을 인용 했습니다. ‘의인’은 그리스도인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할지라도 구원은 쉽게 얻는 것이 아니며 어려운 불 시험을 통과해야만 합니다 (12절), 그러므로 경건한 자들이 얻는 구원도 ‘겨우’ 얻는 것입니다. ‘겨우’는 ‘간신히’라는 의미입니다. 의인인 그리스도인도 심판을 통해 겨우 구원을 얻는다면, 경건치 않은 자들은 당연히 그에 합당한 심판을 받고 멸망 당할 것입니다. 베드로가 의인의 구원을 이렇게 표현한 이유는 그리스도인들이 방탕한 길에 빠지지 않고, 경각심을 갖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19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
19 So then, those who suffer according to God's will should commit themselves to their faithful Creator and continue to do good.
그리스도인들이 삶을 영위하는 가운데,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하고 ,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으로 인해 찾아오는 많은 시련과 고난을 겪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는 모든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고 돌보아주시기 때문입니다. 그 고난 가운데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성화의 과정을 거쳐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
그리스도인들이 아무리 고난을 받는다고 할지라도 그들을 박해하는 핍박자들에게 악으로 갚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오히려 선을 행하므로 악을 갚아야 하며, 확신을 가지고 고난 가운데에도 자신의 영혼을 보호해 주시도록 하나님께 의탁해야 됩니다.
‘의탁할지어다’의 헬라어 [파라티데스도산]은 [파라치데미: 예금하다, 맡기다] 에서 유래한 말로, ‘완전한 신뢰를 가지고 의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파라티데스도산]의 대표적인 예는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자신의 영혼을 의탁하는 것과 (눅 23:46) 스데반의 의탁이 이에 해당됩니다.
‘창조주’에 해당하는 [크티스테]는 외경에는 많이 등장하는 단어이나, 신약성경에는 이곳에만 나옵니다. 이런 표현은, 능히 모든 피조물을 지배하고 다스릴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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