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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로마서

로마서 11장 : 9-10

by 갈렙과 함께 2024. 12. 3.

로마서 11장 : 9-10

9 또 다윗이 이르되 그들의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시옵고

10 그들의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그들의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하였느니라

 

Romans 11 : 9-10

9 And David says: 'May their table become a snare and a trap, a stumbling block and a retribution for them.

10 May their eyes be darkened so they cannot see, and their backs be bent for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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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1장 : 9-10

9 또 다윗이 이르되 그들의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시옵고

9 And David says: 'May their table become a snare and a trap, a stumbling block and a retribution for them.

 

 시편 69:22을 인용한 것입니다. ‘밥상’ 위에 음식을 먹어야 생명을 보존할 수 있습니다. 밥상은 생명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본절의 밥상은 일반 밥상이 아니라 유대인에게 베풀어진 ‘밥상’ 입니다. 이 ‘밥상’은 하나님께서 유대인에게 베풀어주신 ‘생명의 밥상’, 구원을 상징합니다  (창 17:7, 출 6:3, 4,7). 

이 밥상’의 주체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의 떡 (요 6:35,58, 고전 10:16)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자신에게 베풀어준 하나님의 이 ‘밥상’을 거부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그들에게 베풀어주신 구원의 은혜인 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밥상’이 오히려 그들에게 올무가 되고 ‘거치는 것’이 되었습니다.

 

 ‘올무와 덫과’ 에서 올무 [에이스 파기다]는 새나 짐승을 잡는 올가미를 의미하는 고대 단어입니다. ‘덫’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이스데란]은 야생 짐승의 사냥을 나타내는 고대 단어로 이후에 ‘덫’을 의미했습니다. 바울은 의도적으로 유사한 단어를 반복하여 그 올무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강조합니다.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시옵고’ 에서 ‘거치는 것’ 의 헬라어 [에이스 스칸달론]은 덫 혹은 올무를 의미합니다. 이 단어는 앞구절의 두 단어와 상호 보완적으로 서로 설명하는 말로 모두가 유혹과 멸망의 방법을 나타냅니다. 유대인의 파멸은 피할 수 없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이 벌은 하나님께서 직접하셨다 라는 의미와 유대인의 어리석고 강퍅한 마음을 그들 마음대로 내버려 두신, 그 자체가 ‘보응’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되게 하옵소서’ [게네데토]는 헬라어 문법에서는 명령형이지만, 하나님께 간구하는 말투 입니다. 이 말투는 ‘보응,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 과도 연결됩니다. 바울은 이 시편을 인용하여 8절의 내용,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한 눈과 듣지 못한 귀를 주셨다’는 말씀을 입증하고자 합니다. 

 

10 그들의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그들의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하였느니라

10 May their eyes be darkened so they cannot see, and their backs be bent forever.'

 

 바울은 시편 69:23을 인용하여, ‘눈’ 만을 이야기하여, 눈이 몸의 중요한 인식 기관이기에 강조하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눈은 마음의 등불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라고 눈의 중요성을 드러내셨습니다. ‘눈’은 육체의 눈이 아니라 영적인 눈으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흐려’ [스코티스데 토산]은 [스코티조 :어둡게 하다]의 단순과거 수동태 명령법으로, 심히  저주하는 표현입니다. 바울은 시편의 이 표현을을 사용하여, 이스라엘이 받고 있는 현재의  심판에 적용시킵니다. 이들이 이처럼 영적으로 어두운 상태이므로, 자연양심 (natural good sense)을 가진 이방인보다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듣고도 깨달을 수 없게 되었고 (마 13:14, 15), 이것은 유대인의 큰 불행입니다.

 

 ‘그들의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에서 ‘등이 굽는 것은 노예들이 상전 앞에서 두려움을 갖게 될 때 하는 행동입니다. 이스라엘이 완악하여 복음을 거부하고 배척하는 한, 이런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율법의 종이었고 율법 선생인 랍비에게 얽매인 노예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들은 ‘율법의 하나님’ 만을 보느라고 자유함을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런 징벌은 그들이 메시야를 거부했기에 받게 되는 피할 수 없는 형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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