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약/골로새서

골로새서 3장: 11-14

by 갈렙과 함께 2025. 10. 28.

골로새서 3장: 11-14

11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1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13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Colossians 3: 11-14

11 Here there is no Greek or Jew, circumcised or uncircumcised, barbarian, Scythian, slave or free, but Christ is all, and is in all.

12 Therefore, as God's chosen people, holy and dearly loved, clothe yourselves with compassion, kindness, humility, gentleness and patience.

13 Bear with each other and forgive whatever grievances you may have against one another. Forgive as the Lord forgave you.

14 And over all these virtues put on love, which binds them all together in perfect unity.

 

--------------------------------------------------------

골로새서 3장/ Colossians 3: 11-14

11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11 Here there is no Greek or Jew, circumcised or uncircumcised, barbarian, Scythian, slave or free, but Christ is all, and is in all.

 

‘거기’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은 상태를 말합니다. 새 사람을 입은 사람들의 관계에는 차별과 장애가 있을 수 없습니다 (롬 1:14, 갈 3:28).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들은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을 이룬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고전 12:13). 

 

바울은 네 가지 차원에서 차별이 없다고 합니다. 

(1) 헬라인과 유대인 : 이는 민족적 장벽을 의미합니다. 유대인들이 선민의식으로 자기 민족외의 모든 이방인들을 멸시하고 정죄했습니다.

(2) 할례당과 무할례당 : 이는 종교적 장벽을 의미합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의 상징인 ‘할례’를 고수해 왔습니다. 

(3)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 이는 문화적 장벽을 의미합니다. ‘야만인’은 헬라어를 말할 수 없는 자를 지칭하는 것이고, ‘스구디아인’은 흑해 주변에 살던 난폭한 부족을 말합니다.

(4) 종이나 자유인:  이는 사회적 장벽을 의미합니다. 당시 고대 사회에서 ‘종’은 법적으로 소유주의 재산에 불과했습니다. 

바울은 본절에서 모든 사람의 자연적인 동등성과 도덕적인 동등성에 대해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오직 한 분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을 통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성을 이룬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에 대해서 말하고자 합니다.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다양한 부류의 삶들이 차별이 없는 이유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연합의 원리를 나타내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절대적이며 우주적인 우월성을 나타냅니다.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라는 것은 모든 사람과 사물을 그리스도께서 지배하고 계심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만유 안에 계시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민족적, 종교적, 문화적, 사회적 배경과 무관하게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그리스도 인들 안에 내주하심을 의미합니다

 

1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12 Therefore, as God's chosen people, holy and dearly loved, clothe yourselves with compassion, kindness, humility, gentleness and patience.

 

‘옷 입고’의 헬라어 [엔뒤사스데]는 부정 과거 명령법입니다. 이는 새 사람을 입은 그리스도인들이 긍휼, 자비, 겸손, 온유, 오래 참음 들의 덕목을 지속적으로 반드시 지켜야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택하사’와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는 동격입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자’는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을 의미합니다 (롬, 16:13, 고전 1:26-27, 벧전 1:1). 하나님의 은혜로운 행위를 통해 하나님의 소유가 된 자입니다 (시 33:12)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는 ‘택하신 자’를 설명하는 어구입니다. 이 호칭은 복음서에서 예수님께 적용되어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거룩한 분’으로 불리고 (막 12:24, 눅 4:34, 요 6:69). 예수님의 메시야적 칭호로서 ‘사랑받는 자’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마 12: 18, 17:5).

 

‘긍휼’ 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스플랑크 나오이크티르무] 입니다. [오이크티르무]는 70인역에서 하나님께서 ‘가엽게 여기는 자’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시 24:6, 102:4, 144:9). 신약에서는 ‘하나님의 연민’을 나타냅니다 (롬 12: 1, 고후 1:3). [플랑크나]는 문자적으로로 ‘감정의 자리’ ‘마음’을 의미 합니다. 이 두 단어의 합성어인 [스플랑크 나오이크티르무]는 하나님께서 어려움을 겪는 자들에게 나타내는 사랑으로 ‘동정어린 마음, 자비로운 마음’을 의미합니다. 

 

‘자비’는 ‘친절, 상냥함’ 을 의미합니다. 70인역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언약 백성에게 보여주신 친절함을 나타냅니다.(시 24:7, 30:20, 64:12, 67:11, 84:13). 신약에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의미합니다 (롬 2:4ㅡ 11:24, 엡 2:7, 딛 3:4). 새 사람을 옷 입은 그리스도인은 자신에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자비로운 인자하심에 대한 응답으로서 타인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친절해야 됩니다.

 

‘겸손’ 은 새 사람이 된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세이고 (행 20:19), 타인들을 섬기는 자세입니다 (엡 4:2, 빌 2:3, 벧전 5:5).

 

‘온유’ 와 ‘겸손’은 이방세계에서는 미덕으로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구약에서 ‘온유’은 비양심적인 착취로 어려움을 당하는 가난한 자를 대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는데 사용되었고 (시 25:9), 메시야를 설명할 때도 사용되었습니다. 신약에서는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구원을 가져다 주신 예수님의 메시야, 왕의 역할로 표현되었습니다 (마 21:5). 바울은 그리스도의 온유를 고린도인들에게 모범의 예로 제시했습니다 (고후 10:1). 온유는 비그리스도인은 물론 (빌 4:5, 딛 3:2), 범죄한 동료 그리스도인을 대할 때도 지녀야 할 자세입니다 (고전 4:21).

 

‘오래 참음’ 은 그리스도인이든, 비그리스도인이든, 모든 사람에게 보이신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속성으로 인해 심판의 날을 연기하셨습니다(롬 9:22) 이런 ‘오래 참음’은 그리스도인이 지녀야 할 성령의 열매입니다 (갈 5:22). 보복하지 않고 중상 모략을 견디며 사랑으로 용서하는 자세가 ‘오래 참음’입니다. 

 

13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13 Bear with each other and forgive whatever grievances you may have against one another. Forgive as the Lord forgave you.

 

‘용납’과 ‘용서’는 앞절의 ‘오래 참음’에서 나옵니다. ‘용납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서로에게 불평이 있을 때 그 혐오감이나 짐을 피차 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용서하되’의 헬라어 [카리조메노이]는현재 시제로서 ‘상호간의 용서 행위가 지속적이어야 함’을 나타냅니다. 

 

그리스도인이 피차 용서해야 되는 근거는 주께서 우리를 용서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용서해야 됩니다 (1:22). 주님의 화해 사역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시고 우리가 타인을 용서하는 근거가 됩니다 (마 6:12, 눅 11:4).

 

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14 And over all these virtues put on love, which binds them all together in perfect unity.

 

‘이 모든 것’은 새 사람이 입어야하는 덕목으로, 긍휼, 자비, 겸손, 온유, 오래참음 (12절)과 용서 (13절)입니다. 바울은 이 모든 덕목 위에 최고의 덕목인 ‘사랑’을 소유하라고 권고합니다.

‘사랑’은 그리스도인이 지켜야 할 모든 계명을 요약한 가장 큰 계명입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롬 13: 9-10). 사랑은 ‘온전’으로 인도하는 띠입니다.



'신약 > 골로새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골로새서 3장:1-6  (0) 2025.10.27
골로새서 3장:1-6  (0) 2025.10.25
골로새서 2장: 16-23  (0) 2025.10.24
골로새서 2장: 13-15  (0) 2025.10.23
골로새서 2장: 8-12  (0) 2025.10.22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