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3장: 5
5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1 Corinthians 13: 5
5 It is not rude, it is not self-seeking, it is not easily angered, it keeps no record of wro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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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3장: 5
5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5 It is not rude, it is not self-seeking, it is not easily angered, it keeps no record of wrongs.
‘무례’ 에 대한 설명은 이렇습니다.
(1) 공중에 대해 예의 없음을 말합니다. 신자는 그리스도의 지체이고 홀로 고립되어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는 개인이면서 그리스도의 몸인 하나님의 백성으로 모든 지체들과 함께 살아갈 존재입니다. 사람에 대한 책임을 다 할줄 모르는 자가, 어떻게 하나님을 바로 섬길 수 있겠습니까? (요일 4:21). 하나님을 공경하노라 하면서 부모를 박대한 바리새인은 실상 하나님을 바로 공경하지 못한 자였다 (마 15:5,6). 사람에게 대한 예의와 하나님께 대한 경외는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애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라나” 라는 불의한 재판관의 말도 이 관계성을 보여줍니다 (눅 18:4)
(2) 권위를 존중하지 않음도 ‘무례’에 속합니다. 부모는 자식의 권위이고, 선생은 제자의 권위이고, 노인은 젊은이의 권위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제정해주셨습니다. 사람이 이 땅의 권위들을 존경하도록 된 것은 그들이 그 방법을 통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훈련을 받도록 한 것입니다. “너는 센 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레 19:32) 권위를 존경할 줄 모르는 자는 하나님을 알기 어렵습니다. 존경하는 마음은 경건을 돕습니다.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는 상습적으로 개인적인 유익 만을 구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속죄함의 사랑의 받은 사람은 이미 예수님과 함께 모든 것을 받아서 새로 태어 나옵니다. 그는 욥처럼 , “주께서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그를 의뢰하리니” 라고 합니다 (욥 13: 15). 이런 사람은 무엇을 받으려고 행하지 않고, 타인에게 무엇을 주려고만 행합니다. 그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 이유는, 자아가 없어져서가 아닙니다. 그에게도 자아는 분명히 있습니다. 그의 자아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음”을 기억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행 20:35).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이 두 마디 말씀은 서로 비슷한 방면의 한 쌍의 말씀입니다. 성 내는 것이나, 악한 것을 생각함은 둘 다 악한 심리를 발한다는 것입니다.
‘성내는 것’은 잠재되었던 증오가 폭발하는 것으로 그것은 사람을 죽일수 있는 독과도 같은 것입니다. 분노는 남을 죽이려는 마음의 발작입니다.
‘성냄’은 (1) 영생의 생명을 방해하고 (요일 3:15), (2) 하나님의 사랑을 내 마음에서 내 쫓으며 (요일 3:17), (3) 분노하는 자 자신이 먼저 죽는 데로 나아갑니다 (요일 3:14). 남을 죽이려다가 먼저 자기를 죽이고 맙니다. 속죄의 사랑을 받은 사랑의 사람은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성내는 죄를 이기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1)남들로 인해 괴롭힘을 당할때네 분노하게 되지만, 그때 우리가 생각할 것은 이것입니다. “내가 그 형제를 위하여 죽을 책임까지 있는데 그 형제의 그만한 괴롭힘을 당하지 못하랴?”라는 생각입니다. 그렇게 생각함이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죽으신 것을 그대로 믿는 믿음을 지닌 생각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속죄의 사랑을 입었다고 하면서, 행위로는 그것을 받지 않은 자처럼 행동하면 안됩니다. 말로만 믿는다 하고 행위로는 행하지 않으면, 이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소중히 받지 않는 불행한 일이 됩니다.
(2) 분노를 이기는 또 다른 한 가지 비결은 성령 충만의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은 누구든지 간절히 원할 때 받아집니다. 사도 바울은 성령 충만을 받으라고 에베소 교인들에게 명령했습니다. (엡 5:18) 특히 성내기 잘하는 사람으로서는 그 성질 하나가 자신을 망치는 줄 깨닫고 그것을 고치기 위해 전심으로 기도해야 됩니다.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이는 기독교인이 억울함을 당했을 때 가해자에게 복수하지 않고 그로 인해 받은 손해를 생각하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벧전 4:8). 우리가 받은 속죄의 사랑은, 사죄의 사랑이니 이 사랑을 받은 사랑의사람이 어떻게 복수하려는 마음을 가질수 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사랑은, 우리가 그분의 원수였던 때에 그 분이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죽으신 사랑입니다. (롬 5:10).
주님을 위하여 핍박을 받아 얼음 가운데로 패했던 리차드 윌렘손은 자기를 잡으러 온 자가 얼음 가운데 빠져 죽게 되자 그를 건져 살렸습니다. 성도들은 이런 성령의 은혜를 구해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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