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4장: 18-26
18 좋은 일에 대하여 열심으로 사모함을 받음은 내가 너희를 대하였을 때뿐 아니라 언제든지 좋으니라
1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20 내가 이제라도 너희와 함께 있어 내 언성을 높이려 함은 너희에 대하여 의혹이 있음이라
21 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에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22 기록된 바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여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며
23 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24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갈이라
25 이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곳이니 그가 그 자녀들과 더불어 종 노릇 하고
26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Galatians 4: 18-26
18 It is fine to be zealous, provided the purpose is good, and to be so always and not just when I am with you.
19 My dear children, for whom I am again in the pains of childbirth until Christ is formed in you,
20 how I wish I could be with you now and change my tone, because I am perplexed about you!
21 Tell me, you who want to be under the law, are you not aware of what the law says?
22 For it is written that Abraham had two sons, one by the slave woman and the other by the free woman.
23 His son by the slave woman was born in the ordinary way; but his son by the free woman was born as the result of a promise.
24 These things may be taken figuratively, for the women represent two covenants. One covenant is from Mount Sinai and bears children who are to be slaves: This is Hagar.
25 Now Hagar stands for Mount Sinai in Arabia and corresponds to the present city of Jerusalem, because she is in slavery with her children.
26 But the Jerusalem that is above is free, and she is our mo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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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4장: 18-26
18 좋은 일에 대하여 열심으로 사모함을 받음은 내가 너희를 대하였을 때뿐 아니라 언제든지 좋으니라
18 It is fine to be zealous, provided the purpose is good, and to be so always and not just when I am with you.
‘좋은 일에 대하여 열심으로 사모함을 받음은’을, 반어적으로 사용된 것으로 해석하면, 17절에 이어서, 이 내용의 주체는 갈라디아 교인들을 유혹하는 거짓교사들이 주체입니다. “그들이 좋은 동기로 너희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열심을 보인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라는 말입니다.
열심으로 사모 받은 바울 자신처럼, 좋은 동기로 좋은 일에 열심이라면, 언제든지 좋을 것이나, 거짓 교사들은 그런 동기가 아니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열심의 주체를 바울로 해석하면, 바울은 언제든지 진심으로 돕기를 소원한다는 말이 됩니다.
1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19 My dear children, for whom I am again in the pains of childbirth until Christ is formed in you,
‘나의 자녀들’ 이라고 호칭한 것은 갈라디아 교인들이 자신에게서 양육받았음을 나타낸 것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을 양육한 것이, 마치 어머니가 아기를 출산하는 수고와 같다고 비유합니다.
20 내가 이제라도 너희와 함께 있어 내 언성을 높이려 함은 너희에 대하여 의혹이 있음이라
20 how I wish I could be with you now and change my tone, because I am perplexed about you!
바울은 강경한 어조로 언성을 높여 말하지만 실제 그들을 만나면 부드럽고 온유한 말로 격려하고 싶다고 합니다. 지금 언성을 높이는 이유는, 갈라디아 교인들의 상태가 정확히 어떠한지 모르므로 당혹스럽다는 것입니다. 거짓 교사에 미혹된 그들의 상태가 타락으로 빠질까 염려하고 있습니다.
21 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에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21 Tell me, you who want to be under the law, are you not aware of what the law says?
‘율법 아래에 있고자 하는 자들’ 은 여호와의 계명을 사랑하고 존경하며 지키려는 자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외식에 치우쳐 인간의 자유를 구속하려는 갈라디아 교회의 변절자들을 지칭한 것입니다.
22 기록된 바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여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며
22 For it is written that Abraham had two sons, one by the slave woman and the other by the free woman.
아브라함에게는 이스마엘과 이삭 외에도 후처 그두라를 통한 여섯명의 아들들이 있었습니다 (창 25:1-2). 여기서 바울이 두 자녀만 언급한 것은 그들의 탄생에 관련해서 근본적으로 완전히 다른 출발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삭은 약속 (3:6-14) 과 관계된 아들이고, 이스마엘은 약속과 관계없는 육신을 따라난 아들입니다.
이삭은 ‘자유가 있는 여자’, 사라 에게서 났고, 이스마엘은 사라의 ‘여종’ [파이디스케 : 노예로서의 여자] 에게서 났습니다.
이 여종 [파이디스케]는 ‘이스마엘의 신분’과 ‘율법의 신분’을 암시합니다.
23 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23 His son by the slave woman was born in the ordinary way; but his son by the free woman was born as the result of a promise.
‘육체를 따라 났고’는 수태의 방법이 육체의 질서와 법칙으로 태어났음을 보여주고 그 아들을 잉태한 어머니의 신분이 누구인지를 알게 합니다. ‘육체’는 ‘영’과 대조되어 사용되는데 이는 평범한, 일반적, 자연적인 과정으로 이해됩니다. (롬 1:3, 4:1, 고전 1:26)
‘약속’ 의 헬라어 [에팡겔리아스]는 본절에서는 관사없이 사용되었습니다. 이 ‘약속’ 은 이삭이 태어난 원인이며 수단을 나타냅니다. 관사가 있는 그 ‘약속’은 명백하게,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태어나실 메시야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3:19).
24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갈이라
24 These things may be taken figuratively, for the women represent two covenants. One covenant is from Mount Sinai and bears children who are to be slaves: This is Hagar.
바울은 역사적으로 일어났던 사실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교훈으로 현재의 상황에 적용시켜 비유합니다. 현재를 포함한 모든 시대의 사건들은 하나님의 계시 역사와 비교하면 그 의미가 명확히 드러납니다.
25 이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곳이니 그가 그 자녀들과 더불어 종 노릇 하고
25 Now Hagar stands for Mount Sinai in Arabia and corresponds to the present city of Jerusalem, because she is in slavery with her children.
‘하갈’ 이라는 단어가 시내산을 의미하는 단어인지는, 시내산을 하갈 산으로 불렸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바울이 말하려는 요지는 하갈과 시내산및, 지상의 예루살렘은 동일선상에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있는 예루살렘’ 은 당시 유대의 율법주의자들이 몬부로 삼던 예루살렘을 상징합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율법주의자들은 혈통적으로 유대인 중의 유대인이요, 누구보다도 순수한 사라의 후손임에 틀림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율법의 저주를 감당하고 율법을 완성시키신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았기에 여전히 율법 아래에 있는 종의 신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방인들이 믿음을 통해 진정한 아브라함의 후손이 된 것과는 대조가 되는 자들입니다.
26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26 But the Jerusalem that is above is free, and she is our mother.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천상의 새 예루살렘을 상징합니다. 그곳은 율법에게 종노릇하던 자를 해방시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시는 영적 예루살렘입니다.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히 12:24) 이루어진 거룩한 도성 입니다 (빌 3:20).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을 받아들이고,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들은, 모든 시대를 걸쳐서 현재 시점으로, 새 예루살렘의 백성이 됩니다. 성령께서 이를 친히 증거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새 예루살렘은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계 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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