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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갈라디아서

갈라디아서 3장: 20-25

by 갈렙과 함께 2025. 7. 24.

갈라디아서 3장: 20-25

20 그 중보자는 한 편만 위한 자가 아니나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21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과 반대되는 것이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라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22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라

23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25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

 

Galatians 3:  20-25

20 A mediator, however, does not represent just one party; but God is one.

21 Is the law, therefore, opposed to the promises of God? Absolutely not! For if a law had been given that could impart life, then righteousness would certainly have come by the law.

22 But the Scripture declares that the whole world is a prisoner of sin, so that what was promised, being given through faith in Jesus Christ, might be given to those who believe.

23 Before this faith came, we were held prisoners by the law, locked up until faith should be revealed.

24 So the law was put in charge to lead us to Christ that we might be justified by faith.

25 Now that faith has come, we are no longer under the supervision of the la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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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3장: 20-25

20 그 중보자는 한 편만 위한 자가 아니나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20 A mediator, however, does not represent just one party; but God is one.

 

본절은 갈라디아서에서 가장 난해한 구절 중 하나입니다. 매우 많은 학자들의 견해가 있으나 대체로 세가지 견해로 분류됩니다.

 (1) ‘중보’ [메시테스]는 일반적인 의미로 앞절에서 제시한 중보 그 자체를 가리킵니다. 율법은 중보를 통해 사람들에게 간접적으로 주어졌으나, 하나님의 약속은 중보를 통하지 않고 직접 세우셨다는 내용입니다.

 (2) ‘중보’를 모세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이는 문맥에 따른 해석으로 앞서 계속 모세 율법에 관해 언급해왔기에 본절에서 정관사 [호]가 있다는 사실을 근거로 해서 추정한 것입니다. 그러나 정관사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반드시 한 개인을 말하는 것이 아닌 경우도 있습니다.

 (3) ‘중보’를 그리스도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이는 디모데전서 2:5에서 바울이 ‘중보’라는 말을 그리스도에 관해서 사용하기에 이를 근거로 추정합니다. 그러나 이 해석은 문맥상은 맞지 않습니다. 

 

이 견해들이 일치되지 않으나,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명백합니다. ‘율법’은 ‘중보’에 의해 전달되었으나, ‘약속’은 하나님에 의해 직접적으로 주어졌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약속은 직접적 전달이었고, 하나님의 주권적이고 일방적인 언약 체결이었음을 더욱 명확히 나타냅니다.  중보가 그리스도에 의해서든지, 천사나 모세에 의해서든지 상관없이 율법은 간접적으로 전달 된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바울은 창세기 15장의 하나님의 주권적인 일방적인 약속이 율법보다 더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21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과 반대되는 것이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라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21 Is the law, therefore, opposed to the promises of God? Absolutely not! For if a law had been given that could impart life, then righteousness would certainly have come by the law.

 

율법이 약속을 폐할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율법과 약속은 서로 대립되지 않습니다. 이 둘은 모두 근본적으로 하나님께로 부터 왔습니다. 율법과 약속은 서로 다른 목적을 위해 주어졌습니다. 율법은 죄인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역할을 합니다.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얻도록 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므로 이들의 서로 다른 역할은 하나님의 구속 사업에 필요한 것입니다.

 

22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라

22 But the Scripture declares that the whole world is a prisoner of sin, so that what was promised, being given through faith in Jesus Christ, might be given to those who believe.

 

‘성경’으로 번역된 헬라어 [헤 그라페]는 ‘율법’ [노모스]와 동일한 의미로 사용된것입니다. 바울은 앞에서 의가 율법으로 인하지 않는 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본절에서는 율법의 실제 기능에는,, 모든 사람을 죄의 굴레 안에 가두어 두는 것이 있다고 보여줍니다. 율법은 인간을 정죄하기 때문에 사람은 율법주의를 통해서는 하나님께 의롭다함을 여김 받지 못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약속을 받을 수 있습니다.

 

‘모든 것’ 은 헬라어 [타 판타]를 사용했는데, 이는 다른 의미로 사용되기도 했으나 본절에서는 ‘믿는 자’라는 인칭 대명사와 연관하여 사용되었습니다. 바울이 이방인에 대한 율법의 적용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으나, 이 말을 통해 예수그리스도에 의해 구원될 자들은 이방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임이라는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23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23 Before this faith came, we were held prisoners by the law, locked up until faith should be revealed.

 

‘율법 아래 매인바 되고’는 헬라어에서 미완료 수동태로 사용된것으로 ‘ 점진적으로 조여오다’’ 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이 미완료인 상태로 매여 있던 상태는, 모세가 율법을 받은 때 부터 지금 까지 계속되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24 So the law was put in charge to lead us to Christ that we might be justified by faith.

 

‘초등 교사’는 헬라어 [파이다고고스] 로 ‘아이를 돌보는 자, 어린아이에게 시중드는자’라는 의미로 6세부터 16세 까지의 아이들을 돌보는 노예신분의 사람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이들은 가정교사로서 가정의 예법을 가르ㅌ치고 아이가 학교에 오가는 길도 인도하는 노예로 이해되었습니다. ‘교사’ [디다스칼로스] 라는 개념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율법이 그리스도 보다 낮은 지위에 있다는 것은 설명하기 위해 ‘초등교사’ 에 비유했습니다.    

 

25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

25 Now that faith has come, we are no longer under the supervision of the law.

 

율법의 의무는 ‘믿음이 오기 전까지 입니다’. 율법은 자기 임무 만을 수행할 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역사적인 성육신 사건에 의해 율법의 임무는 끝났습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한 모든 사람에게는, 율법에서 믿음으로 옮겨지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의 성숙한 자녀들은 더 이상 ‘초등교사’에 지나지 않는,  ‘율법’ 의 통제 아래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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