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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마태복음

마태복음 17장

by 갈렙과 함께 2023. 9. 25.

마태복음 17장:1-13

1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1 After six days Jesus took with him Peter, James and John the brother of James, and led them up a high mountain by themselves.

  ‘엿새 후’는 만 6일, 한 주가 경과한  때입니다. ‘엿새’는 완전한 수요, 일상과 노동의 숫자입니다. ‘엿새 후’는 ‘이레’ 7이고 승리의 완전 수이고 , 안식과 하나님 나라의 숫자 입니다. 예수님은 참 안식을 취하고자, 그들을 데리고 산으로 가십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영광스런 변화를 목격하는 특권을 허락하시고, 동시에 그들 각자가 당신의 영광을 세상에 전파할 책무를 맡기셨습니다. 두 세사람의 증거는 진실된 증언이 됩니다. (신 19:15, 요 8:17, 고후 13:1)

  ‘높은 산’은 헬몬산으로 해발 2850미터 산봉우리에 눈이 덮혀 있습니다. 이 산은 이스라엘에 물을 공급해 주는 산입니다. 

시온산 혹은 거룩한 산으로 불립니다. 

 

2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2 There he was transfigured before them. His face shone like the sun, and his clothes became as white as the light.

3 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

3 Just then there appeared before them Moses and Elijah, talking with Jesus.

 

4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4 Peter said to Jesus, 'Lord, it is good for us to be here. If you wish, I will put up three shelters-one for you, one for Moses and one for Elijah.'

  ‘주’ [퀴리오스]는 사람이나 사물을 소유, 통치하는 자, 결정권을 가진 자, 주인’을 의미합니다. 이는 종이 주인을 존경으로 부르는 일반적인 존칭입니다. 베드로는 장엄한 광경에 압도되어 ‘ 자기가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는’ (눅 9:33)상태에 있습니다.  

 

5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5 While he was still speaking, a bright cloud enveloped them, and a voice from the cloud said, 'This is my Son, whom I love; with him I am well pleased. Listen to him!'

 

6 제자들이 듣고 엎드려 심히 두려워하니

6 When the disciples heard this, they fell facedown to the ground, terrified.

  제자들은 예수님의 변화된 모습과 모세, 엘리야와 대화하는 영광스런, 분위기에 압도되고, 거룩한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는 더욱 더 죄악된 인간이 느끼는 절대적인 공포를 느꼈습니다. 

 

7 예수께서 나아와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이르시되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니

7 But Jesus came and touched them. "Get up," he said. "Don't be afraid."

  예수님은 그들에게 손을 대시는 사랑의 행동을 하심으로 제자들이 회복시켜주십니다. 

  ‘일어나라 두려워말라’고 하심으로 인간이 지닌 심연의 공포를 제거시켜주십니다.

 

8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8 When they looked up, they saw no one except Jesus.

 

9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명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기 전에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9 As they were coming down the mountain, Jesus instructed them, "Don't tell anyone what you have seen, until the Son of Man has been raised from the dead."

10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그러면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10 The disciples asked him, 'Why then do the teachers of the law say that Elijah must come first?'

  그 당시 서기관들은 말라기 3:1, 4:5에 근거하여 메시야가 오시기 전에 엘리야가 먼저 온다고 주장 했었습니다. 그러니 엘리야가 출현하지 않는 한, 예수가 메시야라는 것은 진실이 아니라는것이 서기관들의 주장입니다. 제자들의 질문 내용은 변화산상에서 엘리야가 출현한 것이 말라기 4:5의 성취인지?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지금 공표해야되는데 왜 그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하는 것인지?  제자들은 그것이 의문입니다.

 

1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

11 Jesus replied, 'To be sure, Elijah comes and will restore all things.

 

12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시니

12 But I tell you, Elijah has already come, and they did not recognize him, but have done to him everything they wished. In the same way the Son of Man is going to suffer at their hands.'

 

13 그제서야 제자들이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이 세례 요한인 줄을 깨달으니라

13 Then the disciples understood that he was talking to them about John the Baptist.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눅 1:17)으로 왔던 세례 요한을 영적으로 무지한 세상 사람들은 그를 엘리야로 알지 못하고 그의 선구자적 메시지만 귀 기울였습니다. 그를 메시야의 선구자로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배척하고 박해하고 죽였습니다. 이런 상황은 예수님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었습니다. 그들은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하고 배척하고 죽음으로 몰아간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수난과 십자가 죽음이 임박했음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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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7장:14-21

14 그들이 무리에게 이르매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이르되

14 When they came to the crowd, a man approached Jesus and knelt before him.

 

15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15 'Lord, have mercy on my son,' he said. 'He has seizures and is suffering greatly. He often falls into the fire or into the water.

  마가 9:21과 누가 9:38에 의하면, 이 아들은 그 아비의 외아들로서 어렸을 때부터 간질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 아비는 예수님의 불쌍히 여겨주시는 마음을 기대하고 왔습니다. 

  간질 [세레니아조마이]는  헬라어로 ‘달의 침범을 받다, 미치다’ 등의 의미가 있습니다. 고대인들은 간질병을 달에 의해 영향을 받는 비정상적 현상이라고 생각한데서 나온 단어입니다. 간질병환자는 갑작스런 발작으로 돌발적이고 불가항력적인 위험에 빠질수 있는데, 이 아들도 불과 물에 넘어지고 있습니다. 마가 9:22에 의하면 귀신에 의해 이 환자가 무의식적으로 자해를 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귀신과 악령들은 사람의 마음에 침투하여 그를 평온하지 못하게 하고 그들의 악한 습성대로 그들이 들어간 그 인격체를 두렵고 불안하게 하고 평형감각도 앗아가서 자멸로 유도하곤 합니다. 

 

16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16 I brought him to your disciples, but they could not heal him.'

  환자의 아비는 예수님 소문을 듣고 아들을 데려왔으나, 예수님은 변화산에 가 계셔서 만나지 못하고 남은 아홉 제자들에게 자신의 처지를 호소했던것으로 보입니다. 실제 그 제자들도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기적을 행하기도 했었습니다. (10:1, 눅 10:17) 이런 권능은 그들의 영원한 소유가 되지 못합니다. 오직 온전한 믿음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의지해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능히 고치지 못하는’ 제자들의 실패는 13:54-19:2 전체를 통해 반복되는 주제입니다. 이적을 행하는 능력은 자신의 것이 아니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고 그 자신의 믿음에 따라서 이루어집니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니라

17 'O unbelieving and perverse generation,' Jesus replied, 'how long shall I stay with you? How long shall I put up with you? Bring the boy here to me.'

 

18 이에 예수께서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 때부터 나으니라

18 Jesus rebuked the demon, and it came out of the boy, and he was healed from that moment.

 

19 이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19 Then the disciples came to Jesus in private and asked, "Why couldn't we drive it out?"

 

20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20 He replied, "Because you have so little faith. I tell you the truth, if you have faith as small as a mustard seed, you can say to this mountain, 'Move from here to there' and it will move. Nothing will be impossible for you."

  ‘믿음이 작은’은 믿음이 없다는 것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그들이 겨자씨 만큼 작은 믿음 이라도 있다면, 반드시 믿은 대로 그 결과가 나왔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아직 믿음이 없는 상태입니다. 하나님의 권위와 섭리를 믿고 인정하는 자에게 기도는 특권이고 의무입니다.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그 작은 겨자씨의 믿음이 산을 옮기는 믿음으로 가시화됩니다. 이 믿음은 자기 신뢰나 신념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 믿음의 일 일때만 산을 옮길수 있습니다. 겨자씨 믿음을 가진 자는 능력과 지혜가 충만하신 하나님과 끊임 없이 소통하는 자로서 하나님의 초월적 경륜을 이 땅에 실현하게 합니다. ‘산’은 사람이 해결하기 어려운 커다란 문제, 난제를 상징하는 표현입니다. 

  믿는 자에게는 ‘너희가 못할 것이 없는’ 전능성에 대한 약속해주신 것입니다. 이 약속은 오늘 우리에게도 유효합니다. (19:26, 빌 4:13, 히11:1)

 

21 (없음)

21 (empty)

  다른 사본에는 21. 그러나 이런 종류는 기도와 금식을 하지 않고는 나가지 않는다’ 가 첨가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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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7장 :22-27

22 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22 When they came together in Galilee, he said to them, 'The Son of Man is going to be betrayed into the hands of men.

  ‘갈릴리에 모일 때’는 예수께서 수주간 팔레스틴 북단에 머무시다가 다시 헤롯 안디바의 영지인 갈릴리 지역으로 다시 접근해 들어오셨음을 말합니다. 이런 갈릴리로의 복귀는 예루살렘으로의 마지막 여행을 위한 준비작업입니다. 마 9:30 에는 이 사건을 ‘갈릴리 가운데로 지날새’ 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갈릴리 호수를 통과 하지 않으시고 윗 갈릴리의 한적한 사잇길을 통해 자신의 고향이 있는 가버나움으로 가셨음을 암시합니다. 본문은 헬몬산 아래의 갈릴리 호수 근처의 가버나움 지방으로 오시는 장면을 묘사한 것입니다. (막 9:30)

   예수님은 자신이 수난을 받게 될것을 공식적으로 두번째 예언 하십니다. 이 수난고지는 믿음이 부족한 제자들을 위한 것으로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이후에 이 일을 뚜렷하게 다시 기억하게 됩니다. (눅 24:6)

 

23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매우 근심하더라

23 They will kill him, and on the third day he will be raised to life.' And the disciples were filled with grief.

  예수님은 패역한 인간들의 순간적 승리 (죽임을 당하고)와 하나님의 영원한 승리 (제 삼일에 살아나리라)를 대비시켜 들려주시고 다가오는 당신의 삶을 정확히 예시하셨습니다. 부활시키시는 하나님의 능력은 인간의 모든 악한 계획을 한 순간의 물거품으로 만들수 있고 하나님은 궁극적 승리를 하실 것입니다. 이 논지의 초점은 결국 승리의 부활을 맞이 하려면 순간적인 죽음은 필연적으로 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심히 근심하고 마가9:32에 예수의 수난예고를 깨닫지 못하고 그에 대해 더 이상 묻기도 두려워 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돌아가실 것이라는 두려움 으로 부활에 관심 기울일 여유가 없었습니다. 예수님 부활 이후에야 수난의 참의미를 이해하고 완전한 신앙으로 자유할수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슬퍼하겠으나 다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그 슬픔이 기쁨으로 변할것이라고 요한복음 16:16-22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24 가버나움에 이르니 반 세겔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나아와 이르되 너의 선생은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24 After Jesus and his disciples arrived in Capernaum, the collectors of the two-drachma tax came to Peter and asked, "Doesn't your teacher pay the temple tax?"

  가버나움은 갈릴리 서쪽의 성읍으로 예수님 선교사역의 중심지 였으나 그들은 회개하지 않고 교만하여 예수님의 책망을 받은 지역입니다. 

  ‘반 세겔을 받는자들’은 일반적인 국세를 거두는 세리와는 다릅니다. 이들은 신분상 로마를 위해 세금을 거두는 자들이 아니라 이스라엘 성전을 위해 거두는 다른 계층의 사람들 입니다. 이들은 이미 예수와 베드로의 관계를 알고 있고 성전을 대하시는 예수님의 태도가 어떠한지 알아보기위해 이 말을 한것으로 보입니다.

  ‘반 세겔’은 헬라어로 [디드라크마] 로 두 드라크마를 의미합니다. 한 드라크마는 헬라인 하루 품삯을 의미하는 동전 명칭입니다. ‘반 세겔’은 유대인들이 출애굽한 후 시내산에서 인구조사를 한 직후에 모든 유대인 남자들이 내었던 생명의 속전으로 애굽에서 건져주신 생명의 대가로 여호와께 바친 양과 같은 것입니다. (출 30:11-16) 이는 주로 성소의 유지 비용으로 사용되었습니다.

 

25 이르되 내신다 하고 집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먼저 이르시되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 관세와 국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25 'Yes, he does,' he replied. When Peter came into the house, Jesus was the first to speak. 'What do you think, Simon?' he asked. 'From whom do the kings of the earth collect duty and taxes-from their own sons or from others?'

 

26 베드로가 이르되 타인에게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26 'From others,' Peter answered. 'Then the sons are exempt,' Jesus said to him.

27 그러나 우리가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27 'But so that we may not offend them, go to the lake and throw out your line. Take the first fish you catch; open its mouth and you will find a four-drachma coin. Take it and give it to them for my tax and yours.'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고 율법 위에 계신 분으로 율법이 정한 그 의무 조항을 능히 초월 하실수 있으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여 사랑의 원리로 스스로 겸손하길 원하십니다. 이런 모범을 따라 사도 바울도 다른 사람을 위한 자기 절제와 겸비의 도리를 가르치게 됩니다. (고전 8:13, 9:12, 22)

  바다 물고기의 입속에 있을 동전 한 닢을 미리 아시는 전지성과 그 동전을 미리 그 곳에 있게 하시는 전능성을 알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바다를 잠잠케 하시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능력자이시나,  스스로 낮추시고 남의 오해를 사지 않으시려고 이런 사소한 수고를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이런 겸손의 교훈은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 그리고 오늘 우리들을 위한 것입니다.

  ‘한 세겔’ [스타테르]는 그리스에 통용되던 금화로 대략 4드라크마입니다.  한 세겔이면 1인당 반세겔을 요구하는 성전세의 두사람 분에 해당합니다. 예수님의 기적은 지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가장 정확한 은혜로 채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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