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4장:1-12
1 그 때에 분봉 왕 헤롯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1 At that time Herod the tetrarch heard the reports about Jesus,
갈릴리 전도의 후반기가 시작된무렵, 헤롯이 세례요한을 처형합니다. (A.D. 39년이후 ) 세례요한의 죽음을 기점으로 예수님의 사역에 이런 특징이 드러납니다. (1) 요한의 죽음이후 예수님은 스스로 당신이 메시야이심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시고, 당신의 수난을 예고 하시고, 십자가 수난을 준비하십니다. (2)당시 세례 요한의 죽음은 사회적, 종교적 큰 이슈(issue)가 되었고 억압받던 일반 대중들은 예수님께 정치적인 기대를 하고, 정치 기득권자들은 예수님에게 더욱 적대적 감정을 가지게 됩니다. 예수님은 구속사적 관점에서 사역을 하시며 미래를 준비하셨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자신들 각자의 편협한 시각으로 예수님을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오해는 예수부활이후에야 해소됩니다.
‘분봉왕’은 ‘한나라의 1/4을 통치하는 자’를 의미합니다. 여기 헤롯은 헤롯대왕이 죽은 B.C. 4년부터 갈릴리와 베레아 지역을 다스렸던 헤롯 안티파스 입니다. 그는 매우 간사한 성품으로 알려져있고 (눅 13:32)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시기 전날 심문했던 자입니다. (눅23:7)
‘예수의 소문을 듣고’의 시점은 갈릴리 지역에서 궁중안에 있어, 일반인에 비해 가장 늦게 예수님의 사역에 대해 알게된 경우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은 예수님이 제자를 파송한 시점으로 부터 1년이 지나서 헤롯이 알게 된것으로 추정됩니다. 그의 신하들이 예수님의 소문을 헤롯에게 언급한 이유는, (예수님께서 사역하시는 참 이유와 관계없이) 예수님이 정치적으로 위험하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2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는 세례 요한이라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으니 그러므로 이런 능력이 그 속에서 역사하는도다 하더라
2 and he said to his attendants, 'This is John the Baptist; he has risen from the dead! That is why miraculous powers are at work in him.'
헤롯은 미신적이며 절충적인 신앙을 소유했기에 자신이 살해한 요한이 부활해서 죽기 전보다 더 강한 모습으로 행동한다는 미신적 사고에 잡혀 있습니다. 그의 이런 생각 때문에 훗날 예수님을 십자가 형에 처하도록 묵시적으로 동조하게 됩니다. 부활사상은 성경의 구약에 이미 드러나 있습니다. (욥 1413-15, 단 12:2-3)호 6:2) 바리새파는 부활신앙에 열렬한 신봉자였고 사두개파 는 부활사상을 전면 부인하였습니다. (행23:8) 죽은 자는 모두 부활하여 심판을 받는다는 신약의 가르침과 다르게 바리새파의 부활은 의로운 유대인에게만 해당된다고 주장합니다.
3 전에 헤롯이 그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잡아 결박하여 옥에 가두었으니
3 Now Herod had arrested John and bound him and put him in prison because of Herodias, his brother Philip's wife,
헤롯이 요한을 살해한 시점은 12제자 파송할 무렵 이었고, 12제자의 파송으로 전국에 예수에 대한 소문이 돌자 이를 두려워한 것입니다.
동생빌립은 헤롯빌립1세로 헤롯대왕과 대제사장 딸 마리암네 사이에 태어난 아들로, 헤로디아의 첫 남편이고 살로메의 부친입니다. 헤롯 안티바스와는 이복 형제입니다.
헤롯 안티바스가 사바티안왕 아레타스의 딸과 결혼한 사이였음에도 동생의 아내인 헤로디아를 유혹하여 남편 필립을 버리고 자신과 불법적인 재혼을 하게 했습니다. 아레타스의 딸은 본국으로 도망가고 사바티안과 두나라는 전쟁이 발발합니다. 헤롯은 결국 이 전쟁에서 참패합니다. 이때는 세례요한을 참수한 직후여서 참패의 원인이 의인을 살해해서 받는 징벌이라고 간주되었습니다.
4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당신이 그 여자를 차지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
4 for John had been saying to him: 'It is not lawful for you to have her.'
요한이 헤롯을 직접 만나서 책망한 것이 아니라 설교중에 여러 사역 중에 헤롯과 헤로디아의 불법적인 결혼에 대해 공공연하게 비난했다는 말입니다.
요한이 헤롯을 책망한 이유는 이방인 출신인 (헤롯대왕은 이두매 사람이었습니다) 헤롯이 형제의 아내와 결혼할 수있는 조건은 그 형제가 아들 없이 죽었을 때 뿐입니다. 헤도디아의 첫 남편 헤롯 빌립1세는 여전히 살아있었기에 그들은 간음죄를 범한 것이고, 헤로디아는 삼촌과 조카 (헤로디아는 헤롯대왕의 다른 아들인 아리스토블로스의 딸입니다. ) 사이로 근친 상간의 죄도 범한 것입니다.
5 헤롯이 요한을 죽이려 하되 무리가 그를 선지자로 여기므로 그들을 두려워하더니
5 Herod wanted to kill John, but he was afraid of the people, because they considered him a prophet.
헤롯은 민중에게 영향력이 큰 세례요한이 자신의 비윤리성을 비난하자, 그를 죽이려했으나 죽이지 못하고 불법적으로 감금합니다.
6 마침 헤롯의 생일이 되어 헤로디아의 딸이 연석 가운데서 춤을 추어 헤롯을 기쁘게 하니
6 On Herod's birthday the daughter of Herodias danced for them and pleased Herod so much
7 헤롯이 맹세로 그에게 무엇이든지 달라는 대로 주겠다고 약속하거늘
7 that he promised with an oath to give her whatever she asked.
살로메의 육감적 독무에 심취한 헤롯은 호언장담을 합니다.
8 그가 제 어머니의 시킴을 듣고 이르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얹어 여기서 내게 주소서 하니
8 Prompted by her mother, she said, 'Give me here on a platter the head of John the Baptist.'
살로매는 육체적으로는 남성의 시선을 집중시킬만큼 성숙했으나, 정신적으로는 제 어미에게 의존할 만큼 미숙한 상태입니다. 이 때문에 그녀는 악의 도구로 전락합니다. ‘시킴’’에 해당하는 원어는 ‘선동하다, 권면하다’는 의미로 헤로디아가 집요하게 살로메를 선동했음을 알게합니다. 헤로디아는 요한의 죽음을 집요하게 헤롯에게 요구했으나 이루지 못하자 딸을 사주하여 사악한 뜻을 이루고자 합니다.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얹어’ 라는 요구 사항은 헤로디아의 사악함의 절정을 보여줍니다. 그녀는 유대의 정치 종교지도자, 심지어 로마의 군관들이 모인 공식적인 연회석 자리에서 이런 행동을 요구한 것입니다.
9 왕이 근심하나 자기가 맹세한 것과 그 함께 앉은 사람들 때문에 주라 명하고
9 The king was distressed, but because of his oaths and his dinner guests, he ordered that her request be granted
헤롯의 근심이 무죄한 자를 죽이는 것에 대한 양심의가책 때문인지 요한의 죽음으로 인한 민란에 대한 것인지 확실치 않습니다. 그가 양심의 최후 투쟁을 했으나 결국 자신의 위치에 집착하여 악에 굴복하는 선택을 합니다. 왕의 맹세는 권위때문에 쉽게 깰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헤로디아는 이것을 악용했습니다.
‘그 함께 앉은 사람들’ 은 왕의 잘못을 제지하지 않고 불의를 조장하고 촉구하던 자들로 그들의 아첨도 요한의 참수를 결단케하는 결정적 요소였습니다.
10 사람을 보내어 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어
10 and had John beheaded in the prison.
11 그 머리를 소반에 얹어서 그 소녀에게 주니 그가 자기 어머니에게로 가져가니라
11 His head was brought in on a platter and given to the girl, who carried it to her mother.
‘소녀’[코라시온]는 혼기에 가까운 처녀를 말하는데 당시는 조혼의 풍습이 있었고, 살로메는 십대의 어린 소녀에 지나지 않았으니 그 어미의 사주를 따를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후 헤롯은 아레타스왕과의 전투로 참패하고, 로마황제의 진노를 사서 프랑스 리용으로 추방되어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됩니다.
12 요한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고 가서 예수께 아뢰니라
12 John's disciples came and took his body and buried it. Then they went and told Jesus.
요한의 제자들은 머리 없는 스승의 시신을 안치한 뒤 예수께 나아갑니다. 요한의 제자들은 스승의 사후 요한의 증언’ 하나님의 어린 양’ (요 1:35-40)을 기억하고 예수님을 더욱 따르게 되어 일부는 예수님의 제자로 합류하고, 나머지는 그들만의 종교 집단을 형성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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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4장: 13-21
13 예수께서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사 따로 빈 들에 가시니 무리가 듣고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따라간지라
13 When Jesus heard what had happened, he withdrew by boat privately to a solitary place. Hearing of this, the crowds followed him on foot from the towns.
예수님의 권능에 대한 소문을, 신하들이 헤롯에게 보고 하였고, 헤롯이 예수님을 세례 요한으로 생각한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헤롯의 관할지역을 떠나 벳새다 광야로 가십니다. 이때부터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 수난과 죽음에 직면한 사실을 인식하시고, 자신의 사역을 제자훈련에 집중하십니다. 예수님이 피신하신 또 다른 이유는 파견했던 제자들이 선교여행후 막 도착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영,육의 휴식기가 필요했고 자신들의 선교에 대한 보고와 선교방법에 대한 예수님의 조언과 복음의 비밀에 대해 더 가르침을 받아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배를 타고 갈릴리 북동쪽 벳새다 율리우스지방으로 가셨고, 사람들은 호수 해변을 따라 도보로 예수님을 따라갑니다.
1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자를 고쳐 주시니라
14 When Jesus landed and saw a large crowd, he had compassion on them and healed their sick.
예수님은 이들을 마음 깊이 불쌍히 여기시고 병을 고쳐주십니다. ‘큰 무리;는 남자만 ‘오천명’ 으로 여자와 어린 아이를 포함하면 적어도 만 오천명을 넘었을 것입니다. (막 6:44)
15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
15 As evening approached, the disciples came to him and said, "This is a remote place, and it's already getting late. Send the crowds away, so they can go to the villages and buy themselves some food."
유대인의 ‘저녁’ [옵시아스] 은 두가지입니다. 제1저녁은 늦은 낮으로 오후 3시부터 시작되고, 제2저녁은 일몰이후에 시작됨니다. 본 구절은 제 1저녁을 말하고, 23절부터는 제2저녁에 해당됩니다.
‘빈 들’ [에레모스]는 광야 혹은 한 적한 곳으로 마을이 없고 음식을 전혀 구할수 없는 장소입니다. 제자들 중에 타산적 사고를 지닌 가롯 유다로 추정되는 이가 무리를 자신들에게서 떠나 보내자는 무책임한 발언을 하고 있습니다.
16 예수께서 이르시되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16 Jesus replied, 'They do not need to go away. You give them something to eat.'
예수님은 제자들의 말을 강하게 거부하십니다. 병들고 굶주린 이들에 대한 깊은 연민과 사랑으로 제자들이 해산 시키려는 그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인간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여러 문제를 주 앞에서 해결하지 않고 돌아가게 하지 않으십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인간이 지닌 어떤 문제든지 당신의 넓은 품안으로 받아주십니다.
‘스스로 사먹게 하소서’라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주라’고 하시니 제자들은 매우 당황했을 것입니다. 원어로 이 동사는 , 즉각적이고 긴급한 행동을 요구하는 제2 과거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못한 제자들에게 굶주린 군중을 먹일 책임감을 일깨워주시고, 예수님에 대한 그들의 신앙의 정도를 시험하십니다.
이 책임은 무리에게 물질적인 양식뿐 아니라 영적인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할 사명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도 베드로에게 ‘ 내 양을 먹이라, 치라, 먹이라’고 세번이나 거듭 부탁하셨듯이 (요 21:15-17) 제자들에게 그들의 사명을 당부하십니다. 이런 책임은 오늘 우리들와 교회 사명이기도 합니다.
17 제자들이 이르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니이다
17 'We have here only five loaves of bread and two fish," they answered.
18 이르시되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하시고
18 'Bring them here to me,' he said.
‘내게 가져오라’ 는 이 말씀은 오병이어의 끝없는 분배 사건이 예수님의 손에서 시작되는 것을 암시합니다. 이 말은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제자들이나, 교회 자체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교회의 머리 이신 예수님 자신에게 가져와야 된다는 사실을 암시합니다.
19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19 And he directed the people to sit down on the grass. Taking the five loaves and the two fish and looking up to heaven, he gave thanks and broke the loaves. Then he gave them to the disciples, and the disciples gave them to the people.
눅 9:14에는 떼를 지어 한 오십명씩 앉히셨다고 하고, 막 6:40절에는 백 혹은 오십씩 앉았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신령한 기적을 행하시기 전에 무리에게 먼저 ‘순종’과 ‘질서’를 요구하십니다.
유대 가정의 가장은 식사 전에 감사기도를 올립니다. 예수님은 이 잔치의 주관자 이시니 ‘하늘을 우러러 축사’ 하십니다. ‘축사하다’ [유로게오]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것을 말합니다.
‘떡을 떼어’ 나누시는 예수님의 손이 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가 15000여명을 먹일수 있는 기적의 근원지입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은 이상한 주문이나 신기한 동작이 아니라, 일상적인 자연스런 행동 속에서 이루어 졌습니다. 떡 조각이 계속해서 불어나고 떡 덩어리가 결코 없어지지 않는 이 기적을 위해서 예수님은 그 많은 사람을 배불리 먹게 하시기 위해 끊임 없이 손으로 떡을 떼 셨습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우리의 영과 육의 양식을 위해 여전히 떡을 떼어 주십니다.
제자들은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았고 이 사실을 전달한 증인들입니다.
20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20 They all ate and were satisfied, and the disciples picked up twelve basketfuls of broken pieces that were left over.
사람들이 충분히 ‘배불리 먹고’ 도 열두바구니가 남았습니다.
21 먹은 사람은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21 The number of those who ate was about five thousand men, besides women and children.
이 시기는 예수님이 돌아가시기 1년전인 유월절이 임박한 시기입니다. (요 6:4) 딩시 이무리들은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이었기에 이처럼 많은 수가 한꺼번에 모일수 있었을 것입니다. 성인 남자만 계수하는 유대인 계산법으로 ‘오천명’이니, 이들은 약 만 오천에서 2만명정도로 추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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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4장: 22-33
22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22 Immediately Jesus made the disciples get into the boat and go on ahead of him to the other side, while he dismissed the crowd.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재촉하여 억지로 배를 타고 건너편 겟세으로 먼저 건너가게 하신 이유는 주님은 홀로 기도하기를 원하셔서 한적한 곳에서 잠시 쉬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는 백성의 의도를 잠재우길 원하십니다.
23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23 After he had dismissed them, he went up on a mountainside by himself to pray. When evening came, he was there alone,
예수님은 자신의 기적으로 중대한 문제가 생길때 마다, 한적한 곳을 찾아 기도를 하셨습니다. (막 1:35, 눅 5:16) 예수님 권능의 비밀은 그가 하나님 아들이면서, 성부하나님과 기도를 통해 지속적인 소통을 하는데서 나옵니다. 사역행위는 그 기도를 입증하는 것입니다.
24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 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스르므로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더라
24 but the boat was already a considerable distance from land, buffeted by the waves because the wind was against it.
배가 육지에서 4.6킬로미터~5.5킬로미터 떠나 있는 상태입니다.
제자들은 풍랑의 위기 앞에 육체와 정신이 동요하고 시험을 당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곤경을 당하는 이 시간에 예수님도 고난중에 하나님께 간구하십니다. 그들의 고난을 목격 하시고도 즉시 그들을 찾지 않으십니다. 이는 그들의 믿음을 훈련시키는 조처입니다. 예수께서 육신으로 그들과 함께 계시지 않더라도 그분의 보호하시는 능력은 여전히 그들 가운데 역사한다는 사실을 확신 시키기 위한 시련의 시간을 두십니다.
25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25 During the fourth watch of the night Jesus went out to them, walking on the lake.
유대인들은 일경을 4시간씩, 밤을 3경으로 나눕니다. 마태는 로마식을 따라 4경으로 기로합니다. 1경은 오후 6-9시, 2경은 9시-12시, 3경은 12시-새벽3시, 4경은 새벽3시-6시입니다.
예수님은 만유의 주인으로 초자연적 위상을 나타내십니다. ‘바다 위를 걸어서’ 세찬 바람과 풍랑과 지구의 중력을 극복하시고 자연의 모든 체계를 다스리시며 그들에게로 오십니다. 이 기적의 사건으로 제자들은 최초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라는 참 신앙적 고백을 하게 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갈라진 바다를 건넜으나 예수님은 스스로의 신성으로 물위를 걸어오신 것입니다.
26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26 When the disciples saw him walking on the lake, they were terrified. "It's a ghost," they said, and cried out in fear.
어둠 속에 물위로 오시는 주님을 보고 제자들은 극심한 두려움으로 주님을 유령이라 생각합니다.
27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27 But Jesus immediately said to them: "Take courage! It is I. Don't be afraid."
‘ 안심하라’ [달세이테]는 ‘담대하라, 용기를 내라’는 의미로 ‘두려움에서 헤어나오라’는 것입니다.
‘나다’ [에고 에이미]라고 예수님 이심에 확신을 주십니다. ‘나는 나다’ 라고 하는 것은 여호와의 이름입니다. (출 3:14) 권능의 주님이 저들을 안심시키려고 친근한 말씀을 주십니다.
28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28 "Lord, if it's you," Peter replied, "tell me to come to you on the water."
베드로가 물위를 걸은 기록은 이 곳에서만 나옵니다. 14-17장 가운데 베드로가 예수께 특별한 제자로 취급 받는 세 경우(16:13-23, 17:24-27) 중 하나입니다.
‘만일 주님이시거든’ 은 현재 직설적 화법으로 ‘과연 주님 이시므로’ 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그는 주님인지 아닌 지를 시험하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명령과 그 능력에 의해 자신도 물위를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믿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직설적이고 열정적인 베드로의 성품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 라고 하는 것은 베드로가 예수님의 ‘명령’에 초점을 두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시고, 말씀 [로고스] 이신 예수님이 육신이 되셔서 그 말씀으로 기적을 이루시고, 천국의 비밀을 선포하시니, 베드로는 예수의 말씀 한마디라면 자신이 그 무엇이라도 할수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에 대한 확고한 신앙과 그 분을 열렬히 사랑함으로 이런 고백을 한 것입니다.
29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29 'Come,' he said. Then Peter got down out of the boat, walked on the water and came toward Jesus.
예수님의 ‘오라’는 명령에는 이미 당신을 믿고 오는 자에 대한 보호와 안전을 준비해두신 권위에 찬 명령입니다. 신앙은 하나님의 명령에 자신의 전인격을 복종 시켜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모험과 같습니다. 아브라함도 75세에 ‘오라’ 부르시니 ‘갈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습니다. (히 11:8) 이스라엘도 ‘믿음으로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습니다. (히 11:29) 베드로는 믿음 으로 그가 알지 못하는 세계인 풍랑 가운데의 바다위로 나아갔습니다.
30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30 But when he saw the wind, he was afraid and, beginning to sink, cried out, 'Lord, save me!'
충동적인 성품의 베드로가 예수께로 가는 동안 ‘바람을 보고’ 그의 믿음의 크기 만큼, 두려워하게 됩니다. 온전한 믿음은 두개의 초점 (예수님과 세상 풍파)가 동시에 허락되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과 그 능력에 대한 절대적인 신앙이 흔들리면서, 그 즉시 예수님의 보호권을 벗어나 중력에 의해 자연현상의 지배를 받아 ‘ 물아래로 ‘빠져 가게’ 됩니다. 신앙에는 중간 지대가 없습니다. 물 위 (완전한 믿음 )이 아니면, 물 아래 (완전한 의심) 둘 중 하나만 있습니다.
31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31 Immediately Jesus reached out his hand and caught him. 'You of little faith,' he said, 'why did you doubt?'
예수님은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신속하게 베드로를 구원하십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도 가능하실 일을 친히 손을 내밀어 그의 몸을 붙잡아 주시고 ‘붙잡아주시는 사랑’을 경험하게 하시려는 의도가 있음을 알게합니다. 성도들이 거친 세상의 파도 가운데 헤맬때 즉시 붙잡아 주셔서 우리의 믿음을 유지하게 하십니다.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라고, 하시며 예수님은 믿음의 양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께로 향하는 영속적인 믿음을 갖는 질적인 측면을 강조하십니다. 왜? 무엇을 위하여 (to what end) (in order to wher) 의심하느냐고 물으십니다.
32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32 And when they climbed into the boat, the wind died down.
예수님이 배에 오르자 두번째 기적으로 ‘즉시 바람이 멈춥니다. 그리스도에 의해 우리의 모든 고통은 잠잠해지고, 평온을 찾습니다.
33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33 Then those who were in the boat worshiped him, saying, "Truly you are the Son of God."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예수님을 불렀던 첫번째 사건입니다. 이는 ‘메시야, 그리스도’ 라는 칭호에 해당하는 완전한 칭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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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4장:34-36
34 그들이 건너가 게네사렛 땅에 이르니
34 When they had crossed over, they landed at Gennesaret.
게네사렛은 갈릴리호수의 서안으로 기후가 따뜻하고 비옥한 평야지역입니다. 북으로 가버나움과 남으로 디베랴가 위치합니다.
35 그 곳 사람들이 예수이신 줄을 알고 그 근방에 두루 통지하여 모든 병든 자를 예수께 데리고 와서
35 And when the men of that place recognized Jesus, they sent word to all the surrounding country. People brought all their sick to him
그들이 예수님을 즉시 알아보고 모여들었다는 것은 예수님이 사역 지역이 얼마나 넓은 지 알게 합니다. ’통지하다’ [아포스텔로]는 사자(使者)를 보내어 소식을 전한다는 의미입니다. 게네사렛 사람들은 이웃과 주변 모든 이들에게 일일이 찾아다니며 주님이 그들 지방에 오신 사실을 알려주었다는 의미입니다. 이미 예수님의 사역은 유대 전지역에 영향을 주고 있었습니다.
36 다만 예수의 옷자락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나음을 얻으니라
36 and begged him to let the sick just touch the edge of his cloak, and all who touched him were healed.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소문이 이미 확산되어, 혈루증 여인처럼 자신들도 옷자락에 손을 대기만 하고도 병이 나을 것이라고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모였으니, 예수님께서 한 사람 씩 차례로 만져주실 것이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니, 병자 자신이 그 분 옷자락이라도 손을 대면 나을 것이라는 강한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나음을 얻으니라’ [디에 소데산]은 완전히[디아], 구원을 받다 [소조] 의미입니다. 환자들은 육신의 병을 고쳤을 뿐 아니라 영혼의 질병까지 완전히 고쳤다는 의미입니다. 세상이 주는 여러 욕망과 고통에서, 영육 간에 자유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성도가 믿음의 자리로 나아오면, 그곳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는 그 분이 주시는 은혜로 자신과, 가정과, 공동체의 여러 아픔을 치유받을 수 있습니다. 특히 강렬한 소망으로 주님 앞으로 더 가까이 가려는 믿음의 자녀는 누구든지 원하는 나음을 반드시 얻게 됩니다. 기적은 오늘도 어김없이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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