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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마태복음

마태복음 5장

by 갈렙과 함께 2023. 6. 29.

마태복음 5장:1-5

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1 Now when he saw the crowds, he went up on a mountainside and sat down. His disciples came to him,

예수께서 산에서 말씀하신 5-7장을 ‘산상수훈’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 무리를 가르치려고 하십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길과 진리와 생명이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2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2 and he began to teach them saying: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 최종 메시지는 ‘천국복음’입니다. 

천국복음이 산상수훈의 핵심주제 입니다.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3 'Blessed are the poor in spirit, for theirs is the kingdom of heaven.

이사야 57:15, 66:2 절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부자나 권력자의 경제적 수탈과 사회적 압박에서 자신을 구할 능력이 없는 자들이 가난한 자입니다. 그러니 가난한 자는 오직 하나님 만을 의지할 뿐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만을 의지하는, 가난한 자가 심령이 겸손하고 회개한 자 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인간은 정말 무가치한 존재이니, 오직 하나님 만을 의지할 뿐입니다. (시 69:29,사 61:1 습 3:12)

‘천국’은, 현세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누리는 모든 특권과, 내세에서 받을 영원한 축복을 의미합니다.  천국은 인간 노력의 댓가로 주어지는 보상이 아닙니다.  오로지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내려지는 하나님의 축복이고 선물입니다.

우리의 심령이 늘 가난하기를 간구합니다.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4 Blessed are those who mourn, for they will be comforted.

이사야 61:1절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진심으로 애통하는 자는 자신의 죄에  대해서 슬퍼하고 절절히 애통하게 됩니다. 이런 애통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시켰던 불의한 죄에 대한 애통이며, 자기 의를 내세우는 교만함에 대한 애통입니다. 이 애통함을 통해 마침내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는 애통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경건한 회개의 눈물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애통하는 자에게 자비를 베푸십니다. 메시야이신 예수님은 우리와 동행하고자 오셨습니다. 그 분이 오신 목적은 이스라엘의 ‘위로’가 되려 하심입니다. (눅 2:25) 성령이 오신 목적도 ‘위로자’가 되기 위함입니다. (요 14:16) 천국에서도 위로가 있을 것입니다. (계 7:17. 21:4) 

예수님은 항상 우리와 동행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와 동행하시고 울고 있는 우리를 위로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 앞에 나아갈 때 마다 위로 받을 수있습니다.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5 Blessed are the meek, for they will inherit the earth.

시편 36:11절에 ‘온유한’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온유하다는 것은 다가온 고통을 오래 참고 인내하는 온화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말합니다. (11:29, 약3:13) 온유함이란 부드러운 마음으로 살며 노하기를 더디하고 절제할 수 있는 것이라고 칼빈을 말했습니다.  세상 정복자는 강한 힘과 권력으로 땅을 정복했지만, 예수님은 온유하심으로 (11:29,21:5) 세상 만물과 천국의 주인이 되셨습니다.  ‘땅’은 이스라엘 땅에 한정된 것이 아닙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약속(창 15:18)을 따라 가나안에 들어간 것처럼, 신약의 성도들이 메시야 왕국의 새하늘과 새땅( 사 66:22, 계 21:1)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천국의 기업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온유한 자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시 37:1, 11, 22,34) 온유한 자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입니다. 하늘의 축복과 땅의 축복이 모두 그들의 소유(고후 6:10)가 되고 마지막 날에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 나라를 상속 받게 될 것입니다. ( 롬 8:17)

우리가 온유할 때 이 땅에서도 기업을 약속 받고, 천국의 기업도 소유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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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장: 6-8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6 Blessed are those who hunger and thirst for righteousness, for they will be filled.

주리고 목마른 것은 이 땅에 사는 모든 인간이 겪는 육신의 기갈 입니다. 이 구절에서는 하나님 말씀을 듣지못해 겪어야하는 영적 기갈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시 42:2, 63:1, 107:9, 암 8:11-14) 

이런 영적 기갈은 영적으로 거듭난 자들이 (요 3:3,5) 체험하게 되는 새 생명에 대한 영적 요구입니다. 이런 자는 이 세상에서도 의롭게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노력하고 정의가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늘 갈망하는 자입니다. 이 땅에서 해결되지 못한 불의는 새 하늘 새 땅에서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믿는 자들입니다. (벧후 3:13)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예수님께서 목자가 되어 보호해 주십니다. 영생의 생명수와 하늘 양식으로 충만하게 채워주십니다. (요 4:14, 6:46-51) 의를 구하는 곳에는 하나님의 선물인 영적 평안이 항상 따를 것입니다.

우리가 늘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되기를 간구합니다.

 

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7 Blessed are the merciful, for they will be shown mercy.

긍휼히 여김은 ‘자비’ [엘레오스]에서 파생된 용어입니다.  히브리어 [헤세드]에 해당됩니다. 

 헤세드는 주인과 종, 사람과 사람 이웃과의 관계 , 하나님과 인간과의 언약적 관계에서 나타나는 긍휼히 여김입니다. 이런 태도는 단순한 감정이나 성품이 아니라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구체적 행위를 말합니다.  인간에게 향하는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 바로 ‘긍휼히 여기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고 예수님의 마음을 품은 자가 바로 ‘긍휼히 여기는 자’ 입니다. 긍휼히 여긴다는 것은 죄를 용서하는 것과 고통당한 자, 궁핍한 자를 동정한다는 것을 동시에 포함한 말입니다. 고통가운데 있는 자, 시련 가운데 있는 자들의 도움에 응답하고 동참하는 자입니다. 성도는 세상을 긍휼히 여기며 이 세상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됩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함께 하실 것입니다.

 

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8 Blessed are the pure in heart, for they will see God.

마음은 히브리어 [레브], [레바브]에 해당되는데 구약에서는  ‘인간의 사고, 종교적 윤리적 원천’ (삼상 12:12) 이라는 의미가 포함됩니다. 신약에서는 인간의 지. 정. 의의 근본 원천을 나타낼 때 사용했습니다. (7:21, 눅21:14, 요 16:6) 

헬라어 [카다로스]에 해당하는 청결은 유대교의 정결 예식에 사용된 용어로 도덕적, 종교의식적인 정결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 구절에서는 인간의 모든 사고와 행동의 원천인 마음으로 탐욕과 두 마음을 이겨낸 내적 청결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죄사함 받아, 주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신실한 성도의 마음이 이런 청결한 상태입니다. 성도는 두 마음을 품지 말아야 됩니다. (약1:8 )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살아야 됩니다. (히 10:22-25)

인간이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그 인간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출 19:21,33:20 삿 6:22) 죄악된 인간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볼수 없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매우 큰 하나님의 영적 축복입니다. 오늘 우리는 신앙의 눈으로 하나님을 봅니다. 동시에, 하나님을 직접 보게 되는 (히12:14, 요일 3:1-3, 계 21:22-27) 축복을 언젠가는 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 안에 늘 청결함이 있어 하나님을 뵐수 있는 은혜가 있기를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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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장: 9-12

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9 Blessed are the peacemakers, for they will be called sons of God.

화평은 헬라어[에이레네], 히브리어[샬롬]에 해당됩니다. 이는 개인의 안녕과(슥6:13) 국가의 평화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회복으로 이루어지는 궁극적인 평화를 의미합니다. (사 54:10, 66:10-14) 인류 역사상 가장 완벽한’ 화평케 하는 자’는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엡 2:14) 예수님은 우리 죄 대신 속죄하여 돌아가신 십자가사역으로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회복 시키셨습니다. 예수님은 평화의 왕이십니다. (사 9:6,7, 눅 214, 요 14:27)

구약에서 이스라엘은 ‘아들’이라 불렸습니다. (신 14:1, 호 1:10) 신약에서 ‘아들’은 온유하고, 심령이 가난하며, 의를 사랑하고, 긍휼히 여길줄 알고 화평케 하는 자를 말합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성품을 닮아 천국의 상속자가 됩니다. 

우리도 화평케 하는자 되기를 간구합니다.

 

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0 Blessed are those who are persecuted because of righteousness, for theirs is the kingdom of heaven.

하나님의 계명을 지킴으로 고통을 당하는 것, 우상에 절하거나 불의와 타협을 거부해서 고통당하는 것, 하나님 나라를 위해 복음을 전하다가 고통당하는 것, 예수님의 이름으로 인해 사회적, 경제적, 어려움을 당하는 것, 이 모든 일들이 의를 위해 박해를 받는 것입니다.  세상은 서로 편견을 갖게 하여  증오하게 만듭니다. 서로 증오를 부추겨 이익을 얻는 세력이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화평케 하는자를 세상이 항상 환영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세상을 화평케 할때도 핍박받을 수 있습니다. (요 15:18,25, 행 14:22) 그리스도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할때는 핍박받는 것을 당연히 여겨야 됩니다. (딤후 3:12)  우리도 담대하게 살게 되기를 간구합니다.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1 'Blessed are you when people insult you, persecute you and falsely say all kinds of evil against you because of me.

10절에서는 ‘의를 위하여’ 가 핍박받는 이유였습니다. 11절예서 예수님께서 ‘나로 말미암아’ 핍박받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의로운 삶은 산다는 것은 예수님의 의로운 삶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입니다. 의를 따라 가는 삶에는 하나님의 축복이 있습니다.예수님을 전하는 자를 박해하는것은 예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축복을 차단하는 행동입니다.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12 Rejoice and be glad, because great is your reward in heaven, for in the same way they persecuted the prophets who were before you.

제자들은 핍박 가운데 있을 때도 마음은 벅찬 기쁨의 상태에 있었고 즐거워했습니다. 엘리야,아모스, 이사야, 예레미야, 느헤미야 같은 선지자들도 핍박을 받았습니다. 신약의 사도들도 핍박을 받았으나, 그들은 박해를 피해 도피하거나, 핍박으로 인해 심란해 하거나, 핍박하는자에게 보복하지 않았습니다. 초대 교회에서 제자직을 수행한다는 것은 그리스도께 충성하는 것이었고 그로인해 고난이 따를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늘의 상을 바라봤습니다.  (행 5:41, 고후 4:17, 벧전 1:6-) 제자들은 그들이 당하는 고난을 새로운 것으로 여기거나, 우연히 일어난 것 보거나, 불합리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에 함께 참여함으로 받는 당연한 과정으로 여겼고,  그리스도와 함께 함을 영광으로 여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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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장 :13-16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13 'You are the salt of the earth. But if the salt loses its saltiness, how can it be made salty again? It is no longer good for anything, except to be thrown out and trampled by men.

소금[할라스]는 인내와 순결과 부패 방지의 상징이었습니다. 거룩한 제사에 사용되었습니다. (출30:35, 레 2:13) 하나님과의 영원 불변하는 언약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민 18:19)

예수님은 비유를 들어 소금의 역할과, 가치를 말씀하셨습니다. 소금이 맛을 잃는다는것은 있을수 없습니다. 염분과 다른 불순물이 함께 있는 재료(소금 광산이나 호수에서 가져온 원재료)에서 소금이 불순물보다 먼저 녹기 때문에 소금을 추출하고 남은 나머지 소금의 원재료는 거의 쓸모가 없습니다. 이 맛을 잃은 소금은 평평한 지붕의 흙 위에 뿌립니다. 그러면 흙이 더 단단해지고 구멍이 나지 않아 오늘날까지도 그렇게 사용합니다. 또한 운동장이나 공공 장소에도 뿌려지기에 사람들에게 여전히 짓밟히게 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실천하여 소금처럼 방부제 역할을 하라고 하십니다. 소금처럼 자신을 희생하여 세상의 더러움을 소독할 수 있어야 된다고 하십니다.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14 'You are the light of the world. A city on a hill cannot be hidden.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세상의 빛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롬 2:19)  진정한 빛은 선지자가 예언한대로 고난 받는 종 한분 뿐이십니다. (사 42:6, 19:6) 이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요 1:9) 그 분으로 인해 예수님의 제자들도 세상을 비추는 새 빛이 될수 있는 것입니다. (엡5:8,9,빌 2:15) 빛은 순수함, 진리와 지식, 하나님의 계시와 임재를 상징합니다. 

 

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15 Neither do people light a lamp and put it under a bowl. Instead they put it on its stand, and it gives light to everyone in the house.

눅8:16 씨뿌리는 비유에 이어 이 비유가 나오고, 막4:21, 눅11:33에도 이 비유가 나옵니다. 등불을 말아래 둔다는 것은 빛을 차단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진리의 말씀이 형식주의, 금욕주의. 전통주의 등에 의해 제한되는 현상에 비유할수 있습니다. 등경은 등불의 받침대로 불을 멀리 퍼지게하는 역활을 합니다. 등경은 성도와 교회가 가지는 개방적인 특성을 나타냅니다. (계1:20) 복음사역자와 교회는 산 위에 있는 동네처럼, 산꼭대기에 선 사람처럼 (사 2:2)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의 선한 말과 행실로 예수그리스도를 전해야 됩니다.

 

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16 In the same way, let your light shine before men, that they may see your good deeds and praise your Father in heaven.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하나님의 마음과 뜻이 나타나는 의를 행해야 됩니다. 그들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나님의 빛을 볼수 있도록 해야 됩니다. 이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수 있습니다. 제자들의 존재가치는 이 빛을 전달하는 사명입니다. ‘소금’이 세상의 부패를 늦추는 소극적 역할 이라면, ‘빛’은 죄로 물들은 어두운 세상을 비추는 적극적인 역할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세상에서 도피하는 것을 염려하셨습니다. 그로 인해 다른 사람들도 하나님께 영광드릴 기회를 잃게 될 것을 걱정하셨습니다.  본 회퍼는 이것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으로 도피하는 것은 부르심의 거부이다. 보이지 않게 숨으려는 예수공동체는 예수를 따르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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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장 :17-20

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7 'Do not think that I have come to abolish the Law or the Prophets; I have not come to abolish them but to fulfill them.

예수님을 비난하던 유대인들은 실제는 자신들이 율법을 훼손시킨 파괴자들 이었습니다. 합리적이라고  주장하던 사두개인들은 선지서를 폐기했고, 고지식한 바리새인들은 과도한 형식적인 잣대로 율법을 훼손 시켰고, 극단적 엣세네인들은 율법과 선지서를 일부 폐기했습니다. 예수님은 율법과 선지서의 지시에 따라 그것을 완성시키려 오신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을 나타내는 구절입니다. 율법의 목적과 율법이 의도하는 것을 그 완전한 의미와 그 진정한 깊은 내용을 완전히 드러내려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바로, 구약이 지향하는 종말론적인 목표임을 드러내십니다. 구약성경의 율법과 모든 선지자가 초지일관으로 가리키는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8 I tell you the truth, until heaven and earth disappear, not the smallest letter, not the least stroke of a pen, will by any means disappear from the Law until everything is accomplished.

세상의 종말이 오기까지 율법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율법의 아주 작은 내용일지라도 모두 소중하고 권위를 갖는다고 말씀하십니다.  문자 그대로 따진다면, 예수님은 안식일을 범하셨고 (12:8) 이혼에 대한 모세의 규범을 거부하셨고 (5:31,32) 음식에 관한 규정은 아예 무효화 하셨습니다 (15:11) 예수님은 율법이 원래 의도하던 율법의 완전한 형태가 이루어지기를 원하셨습니다.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19 Anyone who breaks one of the least of these commandments and teaches others to do the same will be called least in the kingdom of heaven, but whoever practices and teaches these commands will be called great in the kingdom of heaven.

 지극히 작은 계명 하나라도 소중히 여기며 착하고 신실하게 지켰는가, 타인을 올바르게  살도록 계명대로 가르쳤는가 하는 것은 천국에서 인정받는 중요한 잣대입니다. 성경의 모든 가르침은 지극히 작은 것일지라도 실천되어야 됩니다. 율법은 예수그리스도와 그의 가르침을 미리 지시해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율법을 지키는 올바른 길입니다.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20 For I tell you that unless your righteousness surpasses that of the Pharisees and the teachers of the law, you will certainly not enter the kingdom of heaven.

예수님의 가르침은 온유하고 관대하시지만 온전하라고 하십니다.(48)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바리새인들보다 더 낫기를 원하십니다. 그들보다 더 많은 계명과 율법을 지켜야된다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마태는 오히려 지켜야 할 유일한 계명은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 이라고 기록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과 서기관을 비판하신 것은 그들이 선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만족할 만큼 충분히 선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신 말씀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복잡한 수많은 규정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도덕적인 사회가 되는 데는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요구하는 성결이라는 가장 중요한 가치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조문에 순종했고, 세금외에도 십일조를 헌금했고 안식일과 율법의 가르침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순교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자신의 삶에서 가장 최우선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지나치게 형식에 치우치고 보여지는 선행만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제자들은 그들보다 더 진정한 의를 행해야 됩니다. 그들보다 더 열정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 중심의 의를 실천해야 됩니다. 그들은 ‘의의 나무’가 되어야 됩니다. (사 61:3) 그렇게 할때 하나님의 의가 그들을 점령하고 ,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의가 세상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율법을 지식으로, 학문적으로 잘 안다고 해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율법을 실천하는 자가 천국으로 들어갈 수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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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장:21-32

21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1 "You have heard that it was said to the people long ago, 'Do not murder, and anyone who murders will be subject to judgment.'

옛 사람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율법을 받았던  ‘시내산 세대’ 입니다. 여기서 언급된 심판 [크리시스]는 마을마다 있었던 재판소 입니다. (신 16:18, 대하 19:5) 범죄문제를 다루기 위해 설립된 23인 평의회에서 진행되는 사법절차입니다.

 

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22 But I tell you that anyone who is angry with his brother will be subject to judgment. Again, anyone who says to his brother, 'Raca,' is answerable to the Sanhedrin. But anyone who says, 'You fool!' will be in danger of the fire of hell.

예수님은 살인은 분노에서 나오고, 분노 자체가 살인이니 노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형제에게 분노하는 사람은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세상의 법정은 내면의 분노를 사건으로 다루지 않습니다. 우리 내면의 분노는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법정에서 다루어집니다. 형제에게 노하고, 라가 [라카] 라고 모욕하는 자는 산헤드린법정에 서게 됩니다. 라카는 텅빈. 우둔한, 어리석은 , 멍청한 간은 인격을 경멸할 때 사용하는 욕입니다. 미련한 놈[모레]는 추악한 놈이란 의미로 인격이 천박한 상태를 말합니다. 이 말들은 모두 상대방의 인격을 무시하고 큰 상처를 주는 언어 폭행입니다.

 

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3 'Therefore, if you are offering your gift at the altar and there remember that your brother has something against you,

예배를 드리다가 양심에 거슬리는 죄나 타인에게 원망들을 만한 잘못된 행위가 생각나면 (막 11:25) 지체하지 말고 즉시 화해부터 해야 됩니다. 하나님은 인간 상호 간의 인격적인 관계를 무시하는 자의 예배와 헌신을 즐겨받지 않으십니다. (사 1:10-17)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제자라면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관계만큼이나 인간 상호간의 수평적인 관계에도 최선을 다해야 됩니다.

 

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24 leave your gift there in front of the altar. First go and be reconciled to your brother; then come and offer your gift.

먼저 가서, 적극적으로 양보하고 화해하라는 의미입니다. 예배 드릴때 예물의 가치보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물은 형제, 이웃과의 따뜻한 바른 관계가 더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물직적인 예물보다는 형제를 위한 배려와 화해, 봉사등 올바른 행실과 사랑의 관계를 맺는 삶을 살아야 된다는 것을 강조하십니다. 이웃을 미워하고 상처준 뒤, 자신은 거룩한 양 성전에서 예배하며 많은 물질을 바친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그것을 기뻐받지지 않으십니다. 

 

25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고발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옥리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25 'Settle matters quickly with your adversary who is taking you to court. Do it while you are still with him on the way, or he may hand you over to the judge, and the judge may hand you over to the officer, and you may be thrown into prison.

고발한 자와 법정에 가는 길이라면, 법정 밖에서 그 문제를 청산해야 됩니다. 그 순간을 놓치면 화해할 길이 없습니다. 일단 법정에 서게 되면, 시시비비를 가리게되고 사태는 더욱 악화될 뿐입니다. 그 이후는  지옥같은 심적 고통을 맞게 됩니다. 화해의 기회를 놓치지 말고 최선을 다해 화해하고 끝을 내야 감옥에 갇히지 않게 됩니다. 

 

26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26 I tell you the truth, you will not get out until you have paid the last penny.

죄를 지었을 때는 그 빚을 완전히 청산하기까지 남김없이 지불해야 자유롭게 됩니다. 

 

27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7 "You have heard that it was said, 'Do not commit adultery.'

구약에서 간음하지 말라는 순결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절도의 문제로 다루어졌습니다. 간음이란 남의 아내(남의 약혼자도 동일함)를 ‘도둑질’하는 것입니다. 신약에서 예수님은 그것을 모든 부녀자들에 대해서도 해당된다고 하셨습니다. (28절) 유대 율법은 남의 아내에 국한 시키지만, 예수님은 율법을 보다 엄격하게 해석하십니다. 즉, 율법을 없애려하심이 아니라 율법의 본래 의도에 맞게 적용시키십니다.

 

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28 But I tell you that anyone who looks at a woman lustfully has already committed adultery with her in his heart.

남자가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본다는 것은 그 여자에게도 음욕을 품게하여 간음을 하려는 것이니 이미 마음으로 간음하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외적 행위 이전에 이미 눈과 마음으로 간음을 하였다고 보는 것입니다.

 

29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29 If your right eye causes you to sin, gouge it out and throw it away. It is better for you to lose one part of your body than for your whole body to be thrown into hell.

30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30 And if your right hand causes you to sin, cut it off and throw it away. It is better for you to lose one part of your body than for your whole body to go into hell.

‘눈’은 성적인 죄를 짓게 하는것으로 가장 많이 비난의 대상이 되었던 신체의 부분입니다 (민 15:39,눅17:2.롬 14:21) 너를 죄짓는 유혹으로 이끌어 가면 네 오른 눈이 유혹의 도구가 되고 유혹의 원인이 되니 아예 제거해 버리라고 하십니다. 음욕에 대해 말하다가 갑자기 ‘오른 손’을 언급한것에 대해서 음욕도 일종의 도둑질이기에 그렇게 표현했다는 해석과, 이 말이 남성의 성기를 가리키기 위해 완곡하게 사용한 어법이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하여튼 죄를 짓는 부분을 잘라냄으로 죄의 문제를 단호하게 철저하게 다루어야 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적인 죄 뿐만 아니라 모든 죄가 상상으로 부터 시작됩니다. 머리 속에 무엇을 생각하느냐가 천국의 의를 추구하고 실천하는데 매우 중요합니다. 죄악의 근원을 아예 멀리 하는것이 죄를 극복할수 있는 유일한 지혜 입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의 옷을 옷을 잡고 유혹했을 때 요셉은 옷을 버려두고 도망갔습니다.(창 39장) 이것이 유혹에 대적하는 가장 지혜로운 사례입니다. 

 

31 또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려거든 이혼 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으나

31 "It has been said, 'Anyone who divorces his wife must give her a certificate of divorce.'

신명기 4장 1절의 이 율법은 모세 시절 여인의 지위와 권리를 보호 하려는 목적으로  이혼증서를 주라고 한것입니다.  이 이혼법이 남자들의 성적 방종을 위한 도구로 전락되었습니다. 남자들에게 일시적으로 결혼을 허용하게 했고 단 하루만의 결혼도 허용했습니다. 이로 인해 여성을 물건 취급하면서, 이혼증서만 써주면 마음대로 버리거나 다시 취할수 있는 남자의 소유물로 전락시켰습니다.

 

3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그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림받은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32 But I tell you that anyone who divorces his wife, except for marital unfaithfulness, causes her to become an adulteress, and anyone who marries the divorced woman commits adultery.

아무 죄없는 근거없는 이혼은 간음과 같다고 하십니다. 남편은 아내의 허물을 덮어주는 사랑을 실천해야되는데, 죄없는 아내가 이혼을 당하면, 생계가 보장되지 않는 당시의 상황으로는 다시 재혼을 해야되는 실정입니다. 그러니 남편의 유익을 위해 아내를 쉽게 버리는 것은 큰 잘못이라고 지적하십니다. 이혼당해서 어쩔수 없이 재혼하게 되면, 그것도 하나님 관점에서 간음이니,  여인의 잘못보다 아내를 버린 남편의 죄가 더욱 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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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장 : 33- 39

33 또 옛 사람에게 말한 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3 "Again, you have heard that it was said to the people long ago, 'Do not break your oath, but keep the oaths you have made to the Lord.'

맹세에 대해 언급한 이 내용들은 출20:7, 레19:12, 민30:2, 신5:11, 6:3, 22:21-23의 내용의 요약문입니다. 모세율법에서는 거짓 맹세와 여호와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과 서약한 것을 어기는 행동을 금지 시켰습니다. 만약 여호와의 이름이 언급하고, 그 이름을 걸고 맹세한 자는 하나님께 말 그대로 갚아야 할 채무자가 되는 것입니다.

 

3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 임이요

 34 But I tell you, Do not swear at all: either by heaven, for it is God's throne;

여기서 언급된 맹세는 유대인들이 습관적으로 진정성 없이 위선으로, 형식적으로 하는 맹세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법정에서 맹세하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자주 맹세와 서약을 했습니다. (롬1:19, 고후1:23,갈:1:20) 이런 맹세 자체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맹세가 자기 합리화나 자기 변명의 대체 수단으로 전락되니 신중하게 맹세 하라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 예루살렘, 머리카락까지도 모두 하나님의 통치와 소유 안에 속합니다. 그러니, 함부로 맹세하여 그것들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지 말아야 됩니다.

 

35 땅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35 or by the earth, for it is his footstool; or by Jerusalem, for it is the city of the Great King.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곳입니다. 유대인에게는 궁극적인 신앙의 지향점 같은 곳입니다. 그들은 기도와 맹세, 모든 종교적 행사를 를 할때  마다 예루살렘을 향해 눈길을 돌렸습니다. 큰 임금은 모든 역사를 관장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말합니다.

 

36 네 머리로도 하지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36 And do not swear by your head, for you cannot make even one hair white or black.

만물이 하나님으로 부터 창조 되었고, 우리의 머리털도 하나님으로 부터 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 머리털을 하나님이 세신 바 되었고, 그 색을 노년에 희게하고 청년은 검게 하여 그 연수를 정하셨습니다. 즉 인간의 살고 죽음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머리털 하나도 희고 검게할수 없고 그것을 자신의 소유라고 주장할수 없습니다. 그 머리털의 소유자는 하나님이시니 우리 자신이 머리털을 두고 맹세할 수 없습니다.

 

37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37 Simply let your 'Yes' be 'Yes,' and your 'No,' 'No'; anything beyond this comes from the evil one.

인간인 우리가 해야될 말은 단순히 ‘옳으면 옳다하고 아니면 아니다’ 라고 말해야 됩니다. 옳고 그름에 대해 명백하고도 책임감 있는 답변만을 하라고 하십니다. 그 이상으로 하나님을 언급하며 맹세하는 것은 악한 자에게서 나온 허위와 위선이라고 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바로 선 자로서, 옳고 그름을 명백히 밝히고 있는 그대로 만 말해야 됩니다.

 

38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8 "You have heard that it was said, 'Eye for eye, and tooth for tooth.'

예수님은 보복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십니다. 구약에서 ‘눈에는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는 것은 출21:24, 레24:19-20, 신19:21 의 내용입니다. 이 율법의 조항들은 복수를 조장시키려고 만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복수를 금하라고 명한 것입니다. 처벌조항을 선제에 규정하여 무분별한 복수행위가 더 이상 자행되지않도록 미리 막고자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의 질서와 공의에 의해 국가적 사법제도를 만들기 위해 율법을 만든 것입니다. 보복대신 금전이나, 물건으로 배상하기도 했습니다. (출21:26,27)  예수님 시대에도 법정에서 동해복수법을  적용시키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보복을 제한하고 공정한 처벌을 위해 만든 율법의 조항을  사적인 복수와 악행을 정당화 시키는데 악용되는 폐단이 있었습니다.

 

3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39 But I tell you, Do not resist an evil person. If someone strikes you on the right cheek, turn to him the other also.

뺨을 치는 행동은 신체에 아픔을 가할뿐 아니라 모욕을 주고자 하는 의도가 포함됩니다. (고후 11:20) 오른손잡이의 사람이 상대의 오른편 뺨을 쳤다는 것은 손바닥이 아니라 손등으로 살짝 쳤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손바닥으로 때리는 것보다 더 큰 모욕으로 여겨졌습니다. 대적한다는 것은 동해복수법으로 본다면 법정에서 대항한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누군가 뺨을 치며 모욕

하더라도 평정심을 잃지 말고 오히려 왼쪽 뺨을 돌려대어  주라고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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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5장: 40-48

40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40 And if someone wants to sue you and take your tunic, let him have your cloak as well.

일반적으로 겉옷이 속옷보다 더 값이 나갑니다. 밤에 입는 의복과 겉옷은 율법상 압류할수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누가 속옷을 달라고 요구한다면, 그것을 기쁜 마음으로 주라고 하십니다. 심지어 비싼 겉옷까지 주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법정의 판결을 받아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 보다는 차라리 속옷도 겉옷 까지도 다 주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가난한 사람을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41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41 If someone forces you to go one mile, go with him two miles.

로마 군인들은 민간인들을 징용하여 군수물자를 규정된 거리( 로마의 도량형으로 1마일은 5리 )로 운반하게 했습니다. 로마군인들이 구레네 사람 시몬에게 예수님의 십자가를 처형장소까지 운반하게 요구한 기록이 있습니다. (27:32) 이와 유사하게 로마군인들은 일반 개인에게 그런 봉사를 법질서에 어긋나더라도 강제로 요구했습니다. 이런 경우라면 누구라도 분노가 치밀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복수심을 품지말고 그저 도움을 주라고 하십니다. 

 

42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42 Give to the one who asks you, and do not turn away from the one who wants to borrow from you.

무이자로 돈을 빌려주고(출 22:25, 레 25:37, 신23:19) 도움을 청하는 자에게 관대하게 대하라고 하십니다. (신 15:7-11, 시37:26, 112:5) 예수님은 네개의 미담을 통해 새로운 율법규범을 만들려고 하신것이 아닙니다. 이 말씀들은 이웃을 향해 항상 열려있는 마음의 자세로 더 높은 의의 단계를 이루라고 격려하십니다.  돈을 꾸어줄 때 돈을 구하는 자에게 무한정 주라고 명령하지 않으십니다. (잠 11:15,17:18, 22:26) 살인자가 칼을 구한다고 해서 우리가 칼을 줄수는 없습니다. 이런 예화들을 대할 때, 그 중요한 의미를 희석시키거나 왜곡하려는 시도를 하지 말아야 됩니다. 오로지 사랑으로서 성경에서 명령하는대로 예수님의 마음으로 행하면 되는 것입니다.

 

43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43 "You have heard that it was said, 'Love your neighbor and hate your enemy.'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은 사랑을 실천하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교훈중 최절정의 것입니다. (레19:18) 믿는 자에게는 미워할 권리가 없고 오직 사랑할 의무만 있을 뿐입니다.

 

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44 But I tell you: Love your enemies and pray for those who persecute you,

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45 that you may be sons of your Father in heaven. He causes his sun to rise on the evil and the good, and sends rain on the righteous and the unrighteous.

하나님의 성품을 닮고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자가 하나님의 아들이 됩니다. 아들이라면 원수도 사랑하고 박해자를 위해서도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의로운자와 불의한자를 구별하지 않고 사랑하십니다. 그들 모두에게 해를 비추고 비를 내려주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인간이 다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선인과 악인은 마지막 날에 분명한 구별과 차등있음을 가르치십니다,. 

(25:3-46) 공평한 사랑을 주신 하나님께서도 우리 모두에게 바른 도덕적생활과 말씀에 순종하도록 요구하셨습니다. (요 15:9-11, 유1:21) 하나님은 공의로서 언제든지 모든 사람을 정죄하실수 있으십니다. 그럼에도 오래 참으시고 돌이키기를 기다리며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6 If you love those who love you, what reward will you get? Are not even the tax collectors doing that?

세리는 외세를 위해서 세금을 징수하는 매국자이고 이방인들과 접촉하는 부정한 자들이라고 무시당했습니다. 이런 세리들도 자신을 사랑해주는 모친이나  동료를 사랑합니다. 그러니 사랑을 주는 자를 사랑한다는 것은 상받을 만한 자랑거리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개개인의 삶을 세밀히 평가하고 계십니다. 세상의 보상보다 신령한 일에 영화로운 상급을 받아야 됩니다. 

 

47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7 And if you greet only your brothers, what are you doing more than others? Do not even pagans do that?

사람이 친구를 사랑하고 형제만을 사랑한다면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확장된 이기심의 일종 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이기적인 사랑과 예의를 지적하신 것입니다. 

 

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48 Be perfect, therefore, as your heavenly Father is perfect.

구약성경에서 온전한[탐밈]이라는 말은 희생동물이 아무 흠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때 합당한 것입니다.(출12:5) 여호와께 전적으로 헌신된 의로움을 의미합니다.(창 9:6, 신 18:13, 삼하 22:26) 율법이 지향하는 것은 하나님의 온전하심 그 자체입니다. 예수의 제자라면 바로 이런 온전함을 본받아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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