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4장 19-25
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23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24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25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Romans 4: 19-25
19 Without weakening in his faith, he faced the fact that his body was as good as dead-since he was about a hundred years old-and that Sarah's womb was also dead.
20 Yet he did not waver through unbelief regarding the promise of God, but was strengthened in his faith and gave glory to God,
21 being fully persuaded that God had power to do what he had promised.
22 This is why 'it was credited to him as righteousness.'
23 The words 'it was credited to him' were written not for him alone,
24 but also for us, to whom God will credit righteousness-for us who believe in him who raised Jesus our Lord from the dead.
25 He was delivered over to death for our sins and was raised to life for our justifi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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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4장 :19-25
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19 Without weakening in his faith, he faced the fact that his body was as good as dead-since he was about a hundred years old-and that Sarah's womb was also dead.
바울은 아브라함의 생식(生植)능력이 없는 것을 ‘죽은 것’으로 표현했습니다. ‘죽은 것 같음’ [네네크로메논] 은 완료 수동태로 이미 생식 능력이 없어졌다는 말입니다.
헬라 본문에서는 ‘같음’이라는 단어는 사용되지 않았고, ‘이미’[에데]에 해당되는 헬라어가 사용되었는데 개역 성경에는 번역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 두사람 모두가 ‘이미’ 생식 능력이 사라졌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영적 의미에서는 생산 능력이 없는 사라가 그의 후손을 생산하게 된 것이나, 죽었던 그리스도가 다시 살아나셔서 ‘생명을 주는 영’ (고전 15:45 ,life giving spirit) 으로서, 잠자는 자의 첫 열매가 되신 것은 같은 의미를 가집니다.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0 Yet he did not waver through unbelief regarding the promise of God, but was strengthened in his faith and gave glory to God,
아브라함이 의심하지 않은 행위는 자신의 능동적인 행위가 아님을 나타내기 위해서 헬라어 ‘의심하다’ [디아크리노]의 부정 과거 수동태를 사용하여 표현하였습니다.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근거로 믿음으로 살았기에 마음의 갈등을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창세기 17장 17절에 “아브라함이 엎드리어 웃으며 심중에 이르되 백세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세니 어찌 생산하리요”
라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방법에 대해 인간적인 지식 안에서 의문을 가지고 있음을 나타낸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을 통해서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방법을 이미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갈이 사라의 몸종이지만, 이스마엘은 아브라함 자신의 자손이기에 가능하다고 여긴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15장에 하셨던 말씀을, 창 17: 19-21에서 다시 강조하여 말씀하십니다. 사라의 태에서 난 자만이 그 약속을 성취 시킬 것이라고 아브라함에게 명백하게 다시 알려 주셨습니다.
하나님께 후손에 대한 명확한 정의와 약속을 보증받은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이전에 명령하셨던 할례의식을 행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1 being fully persuaded that God had power to do what he had promised.
‘약속하신 그것’은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리라 (17절)는 것과 ‘네 후손이 이같이 이르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약속은 하나님 자신의 전능성과 신실성을 나타내실 목적으로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 약속은 아브라함의 소망이나 아브라함의 확신에 의해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것을 이루려 함이라 ‘ (창 18:19)에 대해 아브라함은 확신하게 됩니다.
22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22 This is why 'it was credited to him as righteousness.'
그러므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 여겨주셨습니다.
23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23 The words 'it was credited to him' were written not for him alone,
24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24 but also for us, to whom God will credit righteousness-for us who believe in him who raised Jesus our Lord from the dead.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은 이 사실은 아브라함 만이 아니라 그의 후손인 믿음의 자손인 우리들에게도 적용됩니다.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을 믿는 ‘우리’ 모두를 위하여 아브라함을 의롭다고 여겨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앞으로 실현될 ‘약속’에 대한 것이었고, 오늘 신약시대 우리 성도들의 믿음은 이미 성취된 ‘약속’에 대한 것입니다.
25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25 He was delivered over to death for our sins and was raised to life for our justification.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내어 줌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동시에 우리를 위하여 살아나심 (부활)으로 십자가 죽으심의 대속의 결과로, 죄많은 우리를 ‘의롭다’ 하시는 보증을 서주신 것입니다.
앞으로 바울은 로마서 5장-8장까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성도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되는지 말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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