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 후서 3장: 4-8
고린도 후서 3장: 4-8
4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같은 확신이 있으니
5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6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7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율법 조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 때문에도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8 하물며 영의 직분은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2 Corinthians 3: 4-8
4 Such confidence as this is ours through Christ before God.
5 Not that we are competent in ourselves to claim anything for ourselves, but our competence comes from God.
6 He has made us competent as ministers of a new covenant-not of the letter but of the Spirit; for the letter kills, but the Spirit gives life.
7 Now if the ministry that brought death, which was engraved in letters on stone, came with glory, so that the Israelites could not look steadily at the face of Moses because of its glory, fading though it was,
8 will not the ministry of the Spirit be even more glorio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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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 후서 3장: 4-8
4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같은 확신이 있으니
4 Such confidence as this is ours through Christ before God.
바울의 선교활동으로 많은 생명을 구원했으나, 그의 확신의 근거가 그 자신의 재능이나 성결함에 의한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이는 모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오는 것임을 분명히 알고 있고 이 확인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심령에 부어주신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대면하여 말하는 심정에 의한 확신이고 비판의 시련을 이겨낼 수 있는 확신입니다.
5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5 Not that we are competent in ourselves to claim anything for ourselves, but our competence comes from God.
바울은 언제나 자기 능력의 원천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빌 4:13). 본절은 “여호와의 날이 크고 심히 두렵도다 당할 자가 누구랴 (요엘 2:11)” 은 하나님의 존재 앞에서 인간은 자신의 연약함과 유한 함을 인식하고 겸손한 태도를 취하게 됩니다. 인간은 죽을 운명을 가진 유한한 존재에 불가합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자족하시는 전능자 이십니다 (룻 1:20, 겔 1:24).
바울은 이것을 철저히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6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6 He has made us competent as ministers of a new covenant-not of the letter but of the Spirit; for the letter kills, but the Spirit gives life.
바울은 ‘율법’과 ‘영’ 이라는 개념에서 ‘옛 언약’과 ‘새 언약’을 대비하여 보여줍니다.
(1)적용대상:
옛 언약은 육적 이스라엘에 적굥시켜진 민족적 한계가 있으나 새 언약은 영적 이스라엘인 믿음의 사람들에게 적욕되어 민족적 한계를 넘어섭니다.
(2)언약의 성립과정:
옛 언약은 하나님께 순종을 맹세하고 피의 희생 제사를 드림으로 성립되었으나, 새언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희생의 제물이 되심으로 성립됩니다.
(3)언약의 수행 방법:
옛 언약은 행함에 있으나, 새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의해서 성립됩니다(롬 10:9-10, 히 10:39)
(4)언약의 결과:
옛언약은 죽음을 낳지만, 새 언약은 생명을 낳습니다. 그러므로 옛 언약과 비교하여 새 언약이 가지는 의미는 단순히 시간적인 차이를 넘어선, 완전한 질적 차이를 가지게 됩니다.
7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율법 조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 때문에도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7 Now if the ministry that brought death, which was engraved in letters on stone, came with glory, so that the Israelites could not look steadily at the face of Moses because of its glory, fading though it was,
본절이 묘사하는 장면은, 모게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께로 부터 십계명이 새겨진 두개의 석판을 수여받아 이스라엘 백성에게로 내려오는 장면입니다 (출 34:29-35). 바울이 말하려는 것은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할 율법을 선포하는 직분을 받은 모세도 그 직분으로 인한 영광 때문에 사람들이 그의 얼굴을 바라보지 못했는데. 영혼을 살리는 직분을 받은 바울의 영광은 더욱 크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돌에 써서 죽게 하는 율법 조문’ 은 ‘율법’ 자체는 선한 것이고 생명으로 인도하기 위해 주어진것이나, 사람들이 범죄하였기 때문에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다는 설명입니다 (롬 7: 10-12).
유대교의 전승되는 말에는 모세 얼굴의 광채가 죽을 때 까지 없어지지 않았다고 하나, 바울은 이것을 반박 합니다. 그 광채는 ‘없어질 영광’ 으로 잠정적인 것이라고 말합니다.
8 하물며 영의 직분은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8 will not the ministry of the Spirit be even more glorious?
직분으로 인해 주어지는 영광은 일시적인 것이나, 하나님의 성령으로 인한 직분의 영광은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히 있으며,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와 은혜의 빛이며 우리의 마음에 생명을 가져다주는 빛입니다. 영의 직분은 현재적인 것이고 그 영의 영광도 현재 드러나는 것입니다.
9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
9 If the ministry that condemns men is glorious, how much more glorious is the ministry that brings righteousness!
7절의 ‘율법조문의 직분’ 이 본절에서는 ‘정죄의 직분’ 으로 대체되고, 8절의 ‘영의 직분’은 ‘이의 직분’으로 대체 되었습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지엄한 요구 앞에 인간을 세워 율법의 됴구에 미치지 목한 인간의 행위를 전죄합니다 (롬 3:19-20). 그러나 복음은 인간의 죄를 사면해 주고 인간이 의롭게 되도록 만듭니다. 그러므로 정죄의 직분에 영광이 있다면, 의의 직분에는 얼마나 영광이 있겠느냐? 라고 말합니다.
‘의’ [디카이오쉬네스]의 개념은 바울이 이 말을 사용할 당시의 용법을 기준으로 이해해야 됩니다. 윤리적인 무죄의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의미합니다. 이런 관계의 성립이 가능한 전제조건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가능해집니다. 의의 직분 속에는 그것을부여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현존합니다.